인권운동가 러스틴 67년만 '동성애 범죄사면'…"부끄러운 역사"

입력 2020-02-06 14:23
인권운동가 러스틴 67년만 '동성애 범죄사면'…"부끄러운 역사"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대착오적 법적용 바로잡는 첫 절차"…사후 23년만

동성애로 복역했지만 비폭력 시민·인권운동…킹 목사의 워싱턴 명연설 기획도

2013년 오바마 대통령이 '자유훈장' 수여하기도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 과거 동성애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미국의 대표적인 흑인 인권 운동가 베이어드 러스틴이 사후(死後) 23년 만에야 사면을 받게 됐다.

러스틴은 75세 되던 1987년에 사망했다.

AP통신에 따르면 개빈 뉴섬 미국 캘리포니아주 주지사는 5일(현지시간) 고인이 된 러스틴의 사면을 발표하면서, 이는 동성애를 처벌했던 시대착오적인 법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이들을 용서하는 국가의 첫 절차라고 발표했다.

러스틴은 1953년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의 한 주차된 차에서 두 명의 남성과 성관계를 맺다 반동성애법 위반으로 체포됐다.

뉴섬 주지사는 67면 만에 이를 사면했다.



러스틴은 흑인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함께 비폭력 평화주의에 기반해 활동했던 미국의 대표적인 시민·인권 운동가였다.

1963년 8월 민권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워싱턴 행진' 당시 킹 목사의 명연설 'I Have a dream'(나에겐 꿈이 있습니다)의 핵심 기획자이기도 하다.

그는 인종차별을 끝내기 위한 비폭력 시위와 불매운동을 돕기도 했다.

동성애로 체포됐던 러스틴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교도소에서 50일간 복역했고, 고향인 뉴욕주로 돌아가기 전에 성범죄자로 등록해야만 했다.

뉴섬 주지사는 당시 경찰과 검찰이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 등 성소수자) 등을 처벌하려고 부랑자나 배회꾼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면 대상자를 확인하고, 그 신청을 신속하게 검토하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는 행정 명령을 내렸다.

또 러스틴과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이들에게 "이런 끔찍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사면을 구하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뉴섬 주지사는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나라 전체의 수많은 사람이 낙인·편견·무지로 인해 불평등한 법 적용을 경험했다"며 "그의 유죄는 동성애자 존재와 그들의 친밀한 관계를 범죄로 취급해 금지한 부끄러운 오랜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평등연맹'의 레베카 아이작스는 "어느 주에서도 이런 노력은 처음인 것 같다"며 "이 새로운 계획은 그들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고 밝혔다.

스콧 위너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상원의원은 성명을 내고 "LGBT(성소수자) 사람들의 세대는 단지 합의된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성범죄자 취급을 받았다"며 "이는 인생을 망치게 하고 수십년간 성범죄자로 등록돼야 했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주는 1975년 동성 성인 간 합의된 성관계를 처벌하는 법을 폐지했다.

2013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훈장(Medal of Freedom)을 러스틴에게 수여한 바 있다.

앞서 뉴섬 주지사는 샌프란시스코 시장이었던 2004년 동성 간 결혼을 금지하는 주 방침에도 미국에서 처음으로 동성애 부부에게 정식 결혼 증명서를 발급해 논란을 일으키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당시 뉴섬 시장의 행동은 그와 시 고위 관계자들이 마련한 '시민 불복종 행동'에 따른 것으로, 보수론자들에게 일격을 가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됐다.

honeyb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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