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에 걸려라'…이탈리아서 14세 중국계 소년 모욕(종합)
현지 이민사회, 중국인 겨냥 인종차별·불이익 발생 우려
신종코로나 확산에 伊로마·밀라노 중국 춘제 행사 연기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과 관련해 이탈리아에서 또다시 중국계 10대 소년이 모욕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ANSA 통신에 따르면 26일(현지시간) 북부 밀라노 인근에서 열린 유소년 축구 경기 도중 한 소년이 상대 팀에 소속된 14살짜리 중국계 소년에게 "너도 중국에 있는 사람들처럼 바이러스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큰 충격을 받은 중국계 소년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운동장을 떠났다고 한다.
중국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란 이 소년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랫동안 경기장에서 축구를 했지만 이러한 인종차별적 모욕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적었다.
그는 "2020년이지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여전히 중국인을 모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슬프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소년은 당시 아무런 양해 없이 그냥 운동장을 떠나버린 데 대해 팀 동료들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소년이 속한 팀도 페이스북 계정에 관련 사건을 공개하고 상대 팀과 가해자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탈리아의 중국계 이민 사회는 우한 폐렴 사태와 관련해 현지에서 중국계를 겨냥한 직·간접적인 불이익 또는 차별적 행태가 심심찮게 발생하는 데 대해 적잖게 우려하는 분위기다.
지난주에는 베네치아에서 현지 10대 청소년들이 중국인 관광객 부부에게 침을 뱉고 욕설을 하는 일이 일어나 파문이 일었다.
이와 관련해 로마의 중국계 커뮤니티 대변인인 루치아 킹은 ANSA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인을 겨냥한 불관용과 차별이 근절되길 희망한다면서 "누구나 바이러스에 걸릴 수 있다. 이는 인종과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로마의 중국계 커뮤니티는 우한 폐렴 확산 우려에 따라 내달 2일 예정된 춘제(春節·중국의 설) 행사를 연기했다.
거대한 중국인 커뮤니티가 형성된 북부의 경제 중심 도시 밀라노
당국 역시 춘제 축제를 지원하고자 준비한 거리 퍼레이드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이탈리아에서 우한 폐렴을 확진 받은 사례는 없다.
바이러스 발생지인 중국 우한에서 돌아온 한 여성이 우한 폐렴 의심 증세로 북부 파르마의 한 병원에 격리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으나 확진 단계까지는 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보건당국은 외국인 관광객이 주로 이용하는 로마 피우미치노, 밀라노 말펜사 등 두 국제공항에 의료진을 배치하고 입국자들의 발열 검사를 하는 등 모니터링을 강화한 상태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현재 중국 30개 성에서 2천800여명이 우한 폐렴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이 가운데 사망자는 81명이다.
중국 외에 미국, 대만, 태국, 일본, 싱가포르, 호주, 말레이시아, 프랑스, 한국 등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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