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에 영향력 행사하는 '국부'(國父) 지위 반대
"이중권력 만들어 대통령제 훼손…러시아에 파괴적 상황"
2024년 4기 임기 종료 후 권력교체에 대한 전망 질문에 답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러시아에서 대통령 위에 '국부'(國父) 같은 인물을 두는 것은 이중권력을 만들어낼 것이며, 이는 국가에 해로운 일이 될 것이라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밝혔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남부 휴양도시 소치의 한 교육센터에서 열린 러시아 유수 대학 학생들과의 면담에서 한 여학생이 푸틴 대통령의 4기 임기가 끝나는 2024년 이후의 권력 승계 전망에 대해 물은 데 대해 이같이 답했다.
이 학생은 "권력 교체기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러시아에서 권력 교체기였던) 1990년대에는 길거리에 나가기도 무서웠다고 들었다"면서 "국제적 관례를 보면 싱가포르나 카자흐스탄 같은 나라에선 국정을 안정화하기 위해 권력 교체기에 특별 기관들을 만들었다. 이와 유사한 것을 러시아에 만들면 어떤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내가 (국부 같은 국가정상의) '스승'이 되길 바라느냐"고 반문하면서 "당신이 제안하는 것은 대통령제를 훼손할 것이다. 러시아 같은 나라에 그것은 적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러 나라에는 각기 다른 상황과 역사 문화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위에 어떤 제도가 나타난다면 이는 이중권력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그것은 러시아 같은 나라에 절대적으로 파괴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은 "싱가포르에선 리콴유가 총리의 '스승'으로 임명됐었다"고 상기시키면서 "리콴유는 훌륭한 사람이며 거의 30년을 권력에 있었다. 사실상 싱가포르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의원내각제 국가인 싱가포르와 대통령제 국가인 러시아의 정치 상황은 크게 다르다면서 러시아는 강력한 대통령제 국가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앞서 이날 자국 서부 리페츠크주(州)를 방문해 현지 사회활동가들과 면담하는 자리에서도 "거대한 영토와 다양한 종교, 많은 인종과 민족을 거느린 러시아 같은 나라에는 강력한 대통령제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푸틴은 또 앞서 지난 18일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관련 행사에 참석해 퇴역군인들과 대화하면서 현행 헌법의 대통령 임기 제한 규정을 아예 없애버리는 개헌을 하자는 제안을 받고 반대 견해를 표시했다.
그는 지난 15일 연례 대의회 국정연설에선 부분적 개헌을 제안하면서 대통령의 임기를 두차례로 제한하는 헌법 개정에 동의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푸틴이 같은 개헌 제안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대통령 자문기관인 '국가평의회'와 상·하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자고 밝힌 점을 들어 그가 다른 방식의 권력 연장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푸틴 대통령이 4기 임기가 끝나는 2024년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권한이 커진 상원 의장이나 국가평의회 의장 등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해 '국부'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30년 가까운 장기 집권 후 작년 3월 퇴임했지만 국가안보회의 의장직과 집권당 총재직을 유지하고 '국부' 지위를 누리면서 계속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영국 식민통치 시절인 지난 1959년부터 1990년까지 31년간 총리 자리를 지켰으며 물러난 뒤에도 '선임장관', '멘토 장관' 등을 맡아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카자흐스탄이나 싱가포르에서와 같은 '국부' 관행이 러시아에선 반복되지 않을 것이란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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