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리·사향고양이·대나무쥐…중국 '야생미식'이 또 화 불렀나

입력 2020-01-22 19:26
오소리·사향고양이·대나무쥐…중국 '야생미식'이 또 화 불렀나

우한폐렴 발원지의 야생동물 상점 차림표 사진 온라인서 퍼져

사스도 중국 야생동물 시장서 시작…최고 전문가도 '야생 동물' 지목

中 당국 "아직 정확한 원인 모른다"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산 야생 오소리 500위안(한 마리), 오소리 고기 45위안, 산 흰코사향고양이(한 마리) 130위안, 흰코사향고양이 고기 70위안, 산 대나무쥐 80위안, 대나무쥐 고기 75위안, 산 기러기 120위안…"

이는 '우한 폐렴'을 일으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시작된 곳으로 지목된 우한(武漢)시 화난(華南)수산물도매시장의 한 야생 동물 가게의 차림표 중 일부 내용이다.

22일 중국 인터넷에서는 화난시장에서 다양한 야생 동물이 산 채로 사육되고 도살돼 식용으로 거래됐음을 보여주는 차림표를 찍은 사진이 퍼졌다.

'SDUIVF'라는 아이디를 쓰는 산둥성의 한 의사는 자신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이 사진을 올리면서 "야생 동물을 다시는 먹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화난시장 동쪽 구역에 자리 잡은 다중(大衆)축목이라는 가게가 내건 차림표에는 위에서 언급한 동물들 외에도 공작, 야생닭, 고슴도치, 여우, 악어, 사슴, 거북, 야생 산양, 낙타, 코알라에 이르기까지 수십 종류의 야생 동물의 이름이 등장했다.

이 차림표는 '수산물도매시장'이라는 겉으로 내건 간판과 달리 화난시장에서 대규모로 야생 동물들이 사육되고 도살돼 팔려나갔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현재 중국에서도 야생 동물 고기를 찾는 극단적인 '미식가'들은 극소수이다.

절대다수의 중국인은 인구 1천만 규모의 대도시인 우한에서, 그것도 하루 유동 인구가 수십만에 달하는 한커우(漢口)역 바로 옆에 있는 화난시장에서 불법적인 야생 동물 거래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에 탄식을 금치 못했다.

한 누리꾼은 "한커우역은 진짜 크고 매일 인구 유동이 엄청난 곳인데 아직도 몰래 야생동물을 먹고 있단 말인가"라며 "사스 바이러스도 사향고양이에서 오지 않았느냐"고 한탄했다.

2003년 유행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박쥐의 바이러스가 변종을 일으키면서 사향고양이로 옮겨졌고 이것이 사람에게 전파됐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실제로 기자가 지난 21일 화난시장을 찾아갔을 때 닭이나 돼지 같은 동물을 키우는 우리에서 나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우한에서 만난 슝(熊)씨는 "화난시장은 이름도 모를 야생 동물을 많이 팔던 곳"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은 '우한 폐렴'을 일으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으로 지목된 상태다.

'우한 폐렴'의 초기 환자 대부분은 이곳 상인들이거나 이곳 일대를 지나간 고객이나 행인들이었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시장에서 판매되던 야생 동물에서 사람으로 퍼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중국의 호흡기 질병 최고 권위자인 중난산(鐘南山) 중국공정원 원사는 최근 중국중앙(CC)TV와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시장 내 야생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염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하면서 오소리와 대나무쥐 같은 동물을 거론했다.

오소리와 대나무쥐는 위 차림표에도 등장하는 동물이다.

보건 전문가들은 야생 상태에서는 절대로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없는 다양한 야생 동물들이 좁고 비위생적인 시장에서 밀집돼 사육되는 과정에서 인간에게도 치명적인 변종 바이러스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2002년 말 중국에서 처음 시작된 사스는 이번과 같이 위생 상태가 열악한 야생동물 시장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중국 정부는 전염병의 온상이 될 수 있는 야생 동물 시장을 대대적으로 단속하기는 했지만 '야생 미식'을 찾는 일부 소비자들의 수요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중국의 여러 재래시장에서는 화난시장처럼 음성적인 식용 야생 동물 거래가 이어져 왔다.

이미 중국을 넘어 한국, 일본, 대만, 태국, 미국 등 세계 각지로 '우한 폐렴'이 확산 중인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전염원이 화난시장의 야생 동물로 최종적으로 밝혀진다면 일부 중국인들의 '야생 미식' 추구가 또 한 차례 세계적인 범위의 보건 위기 사태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중국 정부는 '우한 폐렴'을 적극적으로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면서도 이번 질병의 발병 원인에 대해서는 지극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원을 아직 찾지는 못했다"면서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중국 당국으로서는 하루 유동 인구가 수십만명에 달하는 한커우역 바로 옆에 있는 시장의 불법 거래를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당과 정부를 향한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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