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폐렴 '제2사스' 되나…"정보은폐 있었지만, 초기대응 빨라"
두 전염병 모두 코로나바이러스 원인…"유사도 89% 달해" 분석도
사스 대유행 결정적 원인은 '보도통제'…中 은폐로 전 세계 확산
이번에도 축소 의혹 불거져…'철도 허브' 우한발 '춘제 대이동' 우려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중국 '우한 폐렴'이 중국 전역은 물론 아시아 각국으로 확산하면서 '제2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번지고 있다.
우한 폐렴은 사스와 같은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점에서 불안감이 크지만, 중국 당국이 비교적 신속하게 대응에 나서고 정보 공개도 사스 때보다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사스 재현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중국 당국이 우한 폐렴 발생 초기에 확산 정도 등을 축소하려고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은 지우기 어려워 보인다. 중국 내륙 중심에 위치한 우한이 '철도 허브'라는 점과, 연인원 30억 명이 이동하는 춘제(春節·중국의 설) 대이동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 사스 대확산 결정적 이유는 中 정부 '조직적 은폐'
우한 폐렴이 발생하자 '제2의 사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바로 고개를 든 것은 두 전염병 모두 코로나바이러스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호흡기와 장의 질환을 일으키는 병원체인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 외에 소, 고양이, 개, 낙타, 박쥐, 쥐, 고슴도치 등 포유류와 여러 종의 조류가 감염될 수 있다. 사스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모두 코로나바이러스가 원인이다.
한국 질병관리본부가 중국이 공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입수, 분석한 결과 사스 바이러스와 상동성이 89.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동성은 유전자가 유사한 정도를 나타낸다.
이로 인해 우한 폐렴이 2002년 말 중국 남부 지역에서 첫 발병 후 급속히 확산해 37개국에서 8천 명을 감염시키고 무려 774명의 사망자를 냈던 사스와 같은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사스와 우한 폐렴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스 희생자가 800명에 육박할 정도로 커진 데는 당시 중국 정부의 조직적인 은폐와 이로 인한 초기 대응 미흡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사스는 2002년 말 중국계 미국인 사업가가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 여행에서 감염된 후 베트남과 홍콩으로 이동하면서 호텔 투숙객과 의료진에게 전파했고, 이후 대만, 싱가포르, 캐나다, 미국 등으로 급속히 확산했다.
하지만 당시 세계 각국은 사스라는 전염병이 퍼지는 것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이는 중국의 철저한 보도 통제 때문이었다.
언론 보도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중국은 당시에도 '흑색 공포'로 불리는 8대 보도통제 대상을 선정해 놓았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염병 전파'였다. 흑색 공포는 사람들의 낯빛이 공포로 인해 흑색처럼 변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이다.
이로 인해 사스가 2002년 11월 16일 광둥성 포산(佛山) 지역에서 처음 발병했지만, 이것이 처음 보도된 것은 발병 45일 후인 1월 말에 이르러서였다. 그것도 '이상한 괴질이 발생하고 있다'는 광둥성 언론의 1단짜리 기사가 전부였다.
이후 언론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홍콩 언론이 2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이 '괴질'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지만, 이때는 이미 중국과 홍콩에서 수백 명의 사스 환자가 발생한 후였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중국은 역학조사를 나온 세계보건기구(WHO) 조사단에게 환자를 숨기는 등 사실 은폐에 급급했다. 발병 5개월 만인 4월 10일에야 사스 발생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지만, 당시에도 27명의 환자가 있다고 밝혔을 뿐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양심'으로 불린 인민해방군 301병원 의사 장옌융(蔣彦永)의 폭로 등으로 더는 사스 확산을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이 직접 나서 '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후 주석은 2003년 4월 18일 사스 은폐를 중단할 것을 보건 당국에 지시했고, 사스 은폐에 책임 있는 위생부 부장(장관)과 베이징 시장 등을 경질하면서 사스 확산 방지를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이후 중국 당국의 정보 공개와 WHO를 비롯한 국제기구, 세계 각국과의 공조 체제가 이뤄지면서 사스 확산은 비로소 통제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한마디로 사스 대유행은 중국 당국의 조직적인 은폐와 초기대응 미흡이 불러온 철저한 '인재'(人災)였다고 할 수 있다.
◇ 우한 폐렴, 초기대응 더 낫지만, 축소 의혹은 여전
이번 우한 폐렴 확산 과정에서도 중국 당국이 초기에 사건의 파문을 우려해 신속한 정보 공개에 나서지 않았다는 의혹은 제기된다.
당초 중국 당국은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이 작고, 환자 발생도 우한 내에서만 보고되고 있다며 우한 폐렴의 확산 가능성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태국, 일본 등 중국 밖에서 우한 폐렴 확진 환자가 속출하는데도 중국 내에서는 별다른 보도가 없자 "외국에서 확진 환자가 나오는데, 중국 내 확산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쏟아져나왔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중국 당국의 확진 환자 발표는 18일부터 하루 수십명씩 급격히 늘어났고, 순식간에 2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발생 지역도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더구나 홍콩 언론이 18일 선전, 상하이에서 우한 폐렴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중국 당국은 이를 확인해주지 않다가 20일에야 발표하기도 했다.
21일에는 15명의 의료진이 우한 폐렴에 무더기로 감염됐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 사람 간 감염 가능성이 작다는 그동안의 주장을 무색하게 했다.
하지만 이번 우한 폐렴에 대한 중국 당국의 대응이 사스 때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어 보인다.
사스 때는 첫 발병 후 2개월이 지나 첫 언론 보도가 나오고 5개월이 지나서야 공식 확인이 이뤄졌지만, 이번에는 우한 수산시장에서 정체불명의 폐렴이 발생한 지난달 말부터 중국 관영 매체의 보도가 나왔다.
이후 확진 환자 발표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로 이를 발표하는 등 사스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확진 환자 발표가 늦어진 데는 중국 당국이 사스 이후 엄격한 진단 체계를 도입, 베이징에 있는 중국질병통제예방센터를 거치는 3단계 확진 시스템을 시행한 영향이 크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 '철도허브' 우한, '춘제대이동' 우려…"방역체계도 아직 미흡"
초기 대응에서 사스보다 나았다고 하지만, 우한 폐렴의 확산에 대한 우려는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연인원 30억 명이 이동하는 춘제 연휴 기간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우한 폐렴이 더욱더 빠른 속도로 중국 전역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우한이 중국의 '철도 허브' 중 하나라서 중국 각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다는 점은 이러한 우려를 키운다.
인구가 1천100만 명에 달하는 우한은 후베이(湖北)성의 성도이자 중국 6대 도시의 하나로도 꼽힌다.
중국 9개 성을 연결하는 교통 요지이자 내륙의 거점 도시로서, 하루에 고속철이 430편 통과하는 철도 허브이다. 춘제 대이동 때 수백만 명의 이동이 우한을 거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전날 "단호하게 병의 확산 추세를 억제하라"며 "인민 군중의 생명 안전을 가장 앞에 놓아야 한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춘제 대이동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한을 중심으로 한 방역 체계가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베이징에 사는 한 미디어업계 종사자는 "지난 19일 우한에 갔지만, 철도역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며 "사람들은 대체로 우한 폐렴의 위험에 대한 인식이 낮아 보였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베이징, 상하이, 선전, 홍콩 등의 주민들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어 우한 거주자보다 더 경계심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SCMP, 명보 등 홍콩 언론은 "초기에 의심 환자들이 우한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는 방역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우한을 중심으로 철저한 방역 체계를 구축,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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