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한국과 가치공유" 6년만에 말했지만…"약속 지켜라" 반복

입력 2020-01-20 15:10
아베 "한국과 가치공유" 6년만에 말했지만…"약속 지켜라" 반복

15개월만에 성사된 한일 정상회담…대화·관계 개선 의사 반영

징용 문제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미…분리대응 기조 엿보여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20일 시정(施政) 방침 연설에서는 한국이 일본과 가치를 공유한다고 6년 만에 언급한 점이 눈에 띈다.

전반적인 차원에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되지만 현안인 징용 문제에 관해서는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를 반복해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시정 방침 연설 중 외교·안보 정책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한국은 원래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다. 그렇다면 더욱, 나라와 나라의 약속을 지키고 미래 지향의 양국 관계를 쌓아 올리기를 간절하게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국회 시정방침 연설에서 한국에 관해 '기본적 가치를 공유한다'고 표현한 것은 2014년에 이어 6년 만이다.

2012년 12월 재집권한 아베 총리는 2013·2014년 시정방침 연설에서 한국이 기본적 가치를 공유한다고 언급했으나 2015년에는 가치에 관한 설명을 빼고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표현했다.

2016년과 2017년에는 한국이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언급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합의 이행 및 평화의 소녀상 이전 여부를 둘러싸고 양국이 줄다리기하는 가운데 '가치 공유'보다 양국 관계의 긴밀성 수위가 낮은 표현으로 대체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시정방침 연설인 2018년에 아베 총리는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작년 시정방침 연설에서는 대북 정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미국이나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가겠다"고 언급한 것 외에는 한일 관계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확정,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 재단 해산, 자위대 초계기 갈등 등으로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한 가운데 의도적으로 한국을 외면하는 태도를 취한 셈이었다.

시정 방침 연설은 내각을 대표해 국회에서 그해 정책의 기본 방침을 천명하는 메시지라는 점에서 아베 총리가 6년 만에 한국과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한다고 언명한 점은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담은 것으로 일단 볼 수 있다.

작년 12월에 15개월 만에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등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정상 간 대화를 통해 양국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가운데 이런 흐름을 이어가겠다는 의사 표시로도 보인다.

수출 규제와 관련한 한일 정책 대화가 재개되고 상대적으로 덜 첨예한 문제에 관해 당국 간 소통 노력을 이어지는 가운데 긍정적으로 해석할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양국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일제 강점기 징용 문제에 관한 입장은 변화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그가 거론한 '나라와 나라의 약속'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등을 의미한다.

결국 '당시 협정에 의해 징용 문제는 모두 해결됐으며 한국 대법원판결과 이에 근거한 일본 기업 자산 압류 등 후속 조치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발언을 되새겨보면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나라'라는 점을 언급함으로써 징용 문제에 관한 한국의 양보를 요구하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외교가에서는 한일 관계가 더 악화하는 것을 막고 전반적인 개선을 지향하되 징용 문제만큼은 기존과 마찬가지로 한국 측이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일종의 '분리 전략'이 아베 총리 연설에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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