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르' 푸틴, 내각 총사퇴 미리 안 알려…암투 차단 의도"

입력 2020-01-17 10:30
"'차르' 푸틴, 내각 총사퇴 미리 안 알려…암투 차단 의도"

가디언 "새 총리, 정치경력 전무한 기술관료"…CNN "위키피디아에도 없던 무명"

"푸틴 이너서클 내 권력투쟁 싹트는 징후…갈등 조정 복잡"

러시아 야권, 새 총리 축재 과정에 의문 제기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각 총사퇴 결정을 극비리에 진행, 각료들조차 자신들이 물러나는 계획을 사전에 전혀 몰랐다는 뒷이야기가 전해졌다.

모스크바에서 활동하는 정치분석가 콘스탄틴 가제는 "각료들은 대통령·총리와의 회의에 호출될 때까지도 무엇이 진행되는지 몰랐다"고 16일(런던 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말했다.

가제는 "각료들이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앞서 15일 푸틴 대통령은 의회 권한 강화와 대통령 중임 제한 강화 등을 뼈대로 하는 개헌 계획을 발표하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발표한 내각 총사퇴 결정을 수용했다.

푸틴 대통령은 연방 국세청장 미하일 미슈스틴을 메드베데프 총리의 후임으로 지명했다.

개헌 추진과 개각은 푸틴 대통령이 2024년 퇴임 후에도 정부 내 입지를 확보하려는 의도로 해석되는 분위기다.



아울러 이번 개각에서 푸틴 대통령의 퇴임을 앞두고 정권 내 계파 간 권력투쟁을 통제하려는 의도도 읽힌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이는 그동안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한 미슈스틴을 총리로 낙점한 데서 잘 드러난다.

미슈스틴은 총리로 지명되기 전까지 위키피디아 영문 페이지조차 없던 무명의 기술관료라고 미국 CNN 방송은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이 정치 경력이 전무하고 푸틴 이너서클의 일원도 아닌 세무관리를 총리로 지명한 것은 중립적 선택을 함으로써 향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고 러시아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미슈스틴은 알렉세이 쿠드린 전 재무장관처럼 진보 성향도,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 같은 매파도 아니다.

러시아 정치과학자 예카테리나 슐만은 "총리 인사는 특정한 정치적 메시지를 드러내지 않았다"며 현재로선 미슈스틴이 푸틴 대통령의 후임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다고 관측했다.



가디언은 푸틴 대통령의 퇴임을 앞두고 정권 내부에서는 이미 낮은 수위로 암투 기운이 감지되고, 이는 푸틴 대통령의 시나리오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고 소개했다.

친정부 성향 정치분석가 예브게니 민첸코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메아리' 라디오에 출연해 "지난 1년간 안보 기관에서, 심지어 연방보안국(FSB) 내부에서조차 갈등이 커지는 징후가 포착된다"며 실력자들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것이 매우 '복잡한' 과제라고 우려했다.

러시아 정가에서 그간 총리 후보로 거론된 유력 인사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뱌체슬라프 볼로딘 두마(하원) 의장, 파트루셰프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 이고리 세친 로스네프트 최고경영자, 세르게이 체메조프 로스텍 최고경영자, 기업인 유리 코발추크, 아르카디 로텐베르그, 겐나디 팀첸코 등이다.



아무도 예상못한 '깜짝 발탁'이라고 해도 미슈스틴이 조기에 교체될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섣부르다.

2004년 푸틴 대통령이 총리로 임명한 세무 조사관 출신의 미하일 프라드코프 총리는 3년간 재임했다. 푸틴 대통령 본인도 1999년 당시 옐친 대통령이 총리로 지명했을 때에는 예상 밖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러시아 두마는 16일 미슈스틴 임명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공산당 소속 의원은 모두 기권했다.



반(反)푸틴 성향 야권과 활동가들은 미슈스틴 총리의 축재 과정에 의혹을 제기했다.

러시아 탐사 전문 사이트 '프로엑트'는 미슈스틴이 총리로 지명된 직후 등기부에서 미슈스틴 소유의 부동산 2건의 소유자 명의가 바뀌었다고 이날 폭로했다. 부동산 2건의 가치는 약 120억원에 이른다.

프로엑트에 따르면 미슈스틴 명의였던 모스크바 부촌의 주택과 도심의 아파트 소유자가 '러시아 정부'로 바뀌었다. 러시아에서 등기부 소유주가 정부로 기록된 부동산은 실소유주가 비공개라는 의미로 통한다.

'푸틴 대항마'로 불리는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미슈스틴 총리 배우자의 신고 소득이 지난 9년간 150억원이나 된다고 공개했다.

나발니는 "미슈스틴은 지난 20년간 '공복'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부유한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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