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로 끝난 한궈위의 대만 대권 도전…"'한류 신화' 끝나"

입력 2020-01-12 13:51
실패로 끝난 한궈위의 대만 대권 도전…"'한류 신화' 끝나"

무명 정치인에서 한달음에 국민당 대선 후보로 극적인 부상

대선 정국 초반 압도적 선두 달렸지만 반중 정서에 '고배'



(타이베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한류(韓流)가 폭발적으로 치솟았다가 폭발적으로 꺼졌다. 신화는 끝났다."

대만 빈과일보는 12일 국민당 대선 후보인 한궈위(韓國瑜) 가오슝(高雄) 시장의 패배를 조명한 기사의 헤드라인을 이렇게 뽑았다.

여기서 말하는 '한류'는 한궈위 시장의 높은 대중적 인기를 뜻한다.

대만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극적인 스토리를 연출한 한 시장이 11일 대선에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에게 크게 패해 고배를 들었다.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대만에서는 한 시장이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해 총통부의 새 주인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는데 짧은 시간에 상황은 뒤집혔다.

한 시장은 대만 정치권에서 '이단아' 같은 독특한 스타일의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그는 1993년부터 2002년까지 3선에 걸쳐 입법의원(국회의원)을 지냈다.

이후에는 타이베이 농산물도매공사 사장을 지낸 것이 이후 주된 경력일 정도로 정치권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

'중고 신인'인 그는 2018년 11월 치러진 대만 지방선거에서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한궈위는 민진당이 20년 동안이나 장악한 가오슝시 시장 자리에 도전장을 냈다. 국민당의 간판을 내세워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는 자리이기에 그에게도 기회가 돌아왔다.

자금력도 당 조직의 지원도 없던 한궈위는 정치적 논쟁과는 철저히 거리를 두면서 낡고 쇠락한 대만 제2의 도시 가오슝을 재도약시키겠다는 민생 공약을 부각하는 전략을 택했다.

소탈하고 친근한 이웃 아저씨 같은 이미지도 한 시장이 가진 강력한 무기다.

2018년 여름 가오슝에 폭우가 내렸을 때 홀로 우산을 든 채 양복바지를 걷어 올리고 침수 현장을 다니며 주민들을 위로한 모습은 대중들에게 큰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지방선거 마지막 날 선거 유세 때는 자신과 같은 대머리인 지지자 200여명을 모아놓은 '가오슝 빛내기' 이벤트를 열었다. 이는 대만의 기성 정치인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한 시장은 엄숙함을 벗어던진 친근한 정치인으로 주목받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현실성이 없는 포퓰리즘적인 구호를 앞세우는 정치인이라는 비판도 따라붙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기반한 열광적 지지층은 가오슝을 벗어나 대만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국민당은 한궈위 열풍인 '한류'에 힘입어 2018년 11월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에 압승을 거뒀다.

가오슝 시장 당선에 성공하면서 그는 일거에 중앙 정치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단숨에 대권 주자로 발돋움한 한궈위는 작년 연초부터 각종 대선 가상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당내 기반이 전무하다시피 했지만 압도적인 여론 지지를 바탕으로 국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하지만 외부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그의 질주를 가로막았다.

일국양제 통일 방안을 받으라는 요구와 함께 군사·외교·경제 등 다방면에 걸친 중국의 압박기 거세지면서 대만에서 '중국 위협론'이 급속히 고개를 들었다.

이는 대만 독립 성향의 차이 총통에게 유리하고, 전통적으로 양안 관계를 중요시하는 국민당의 대선 후보인 한궈위에게는 불리한 상황 변화였다.

설상가상으로 작년 6월 홍콩의 대규모 민주화 요구 시위 폭발로 대만에서도 반중 정서가 크게 높아지면서 한 시장은 결정적 타격을 받았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한 시장의 지지율은 작년 상반기 내내 차이 총통을 크게 앞섰지만, 홍콩 시위대와 정부 간의 충돌이 격해진 여름 무렵부터는 차이 총통이 '지지율 뒤집기'에 성공했고 이후 격차는 더 벌어졌다.

중국의 압박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관한 의제에서 민진당 진영에 끌려다니던 한 시장은 뒤늦게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는 단호히 거부하되 하나의 중국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판세는 이미 차이 총통 쪽에 기운 뒤였다.

외부 요인 외에도 대선 후보로서 한 시장 본인의 역량에도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한궈위가 시장 선거에서는 '가오슝이 떼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단순한 감성적 구호를 앞세워 승리할 수 있었지만 대선 과정에서 안보, 경제, 복지 등 종합적인 집정 구상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국민당의 분열도 한궈위 후보의 발목을 잡았다.

대만 최고 부호인 궈타이밍 훙하이(鴻海)정밀그룹 전 회장은 한 시장과 국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하자 탈당해 제3 후보인 쑹추위(宋楚瑜) 지지를 선언하면서 한 후보의 당선 가도에 재를 뿌렸다.

한 시장의 고난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궈위는 11일 가오슝 시장 자리로 복귀해 계속 시장직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3만명의 가오슝 시민들은 그가 시장에 당선되자마자 시정을 내팽개치고 대선에 나섰다면서 주민소환을 신청했다.

장촨셴(張傳賢) 대만 중앙연구원 정치학연구소 연구원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에서 차이 총통이 재선되기는 했지만 차이 총통의 승리라기보다는 한궈위의 실패라고 말할 수 있다"며 "입법위원 정당별 투표에서 민진당의 지지율은 34%로 지난 선거의 44%보다 내려왔는데 이는 한궈위에 대한 불만 탓에 대선에서는 차이 총통을 찍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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