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처럼 '中거리두기' 택한 대만인들…시진핑 '중국몽' 상처
투표로 '반중 정서' 분출…'주권 수호' 차이잉원 다시 선택
中 일국양제 압박 역효과…홍콩시위·미중갈등도 차이잉원엔 호재
(타이베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이 대만에 홍콩처럼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통일 방안을 받으라면서 갖은 압박을 가했지만 대만인 유권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중국과 거리를 두는 쪽을 택했다.
홍콩 지방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한 데 이어 대만 유권자들까지 독립 성향의 차이 총통의 재선을 선택한 것은 중국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국양제를 바탕으로 '미수복 지역'으로 간주하는 대만 통일이라는 중국의 마지막 역사적 위업을 달성하고자 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야심찬 '중국몽'(中國夢) 구상에도 적지 않은 상처를 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1일 치러진 대선에서 대만인들은 '주권 수호'를 기치로 내 건 집권 민주진보당 후보인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에게 다시 한번 '대만호'를 이끌어가는 키를 맡겼다.
차이 총통의 재선을 원치 않는 중국은 작년부터 대만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대만 유권자들에게 '올바른 선택'을 하라는 노골적인 메시지를 발신했다.
시 주석은 작년 1월 대만에 일국양제 통일 방안을 받으라고 요구하면서 무력 통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언급함으로써 직접 대만 압박의 포문을 열었다.
평화통일을 추구하되 만일의 경우 무력 통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은 중국의 기존 입장이기는 했다. 그러나 최고 지도자가 민감한 발언을 작심하고 꺼냈다는 점에서 대만인들이 느끼는 긴장감은 예전과는 달랐다.
이를 신호탄으로 군사·외교·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파상적인 중국의 대만 압박이 이어졌다.
중국 전투기가 1991년 이후 근 20년 만에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 대만 전투기들과 대치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항공모함을 포함한 중국 군함과 군용기들이 대만을 포위하듯이 둘러싸고 훈련하는 일도 잦아졌다.
중국의 외교적 공세 속에서 작년 키리바시와 솔로몬제도가 대만과 단교했다. 차이 총통 취임 후 총 7개국이 대만과 단교해 현재 대만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나라는 15개국 뿐이다.
아울러 작년 8월부터는 자국민의 대만 자유 여행을 제한함으로써 대만에 연간 1조원대로 추산되는 경제적 타격을 가했다.
작년 초부터 대만 정치권에서 대선을 향한 경쟁이 본격화 한 상황에서 중국의 이같은 행보는 다분히 차이 총통이 속한 민진당의 재집권을 막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간주됐다.
그렇지만 중국의 의도와 달리 이런 압박은 대만인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2018년 11월 지방선거 패배로 재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던 차이 총통의 정치적 생명 부활의 계기가 됐다.
차이 총통은 중국의 압력에 단호히 맞서 대만의 주권을 지키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하면서 지지율을 서서히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런 가운데 작년 6월부터 시작된 홍콩의 민주화 시위 운동은 대만에서 반(反)중국 정서가 급속히 커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중국이 대만에 일국양제 통일 방안을 받으라고 압박을 가하던 중, 홍콩에서 벌어진 반중 시위는 대만인들에게 '오늘의 대만이 내일의 홍콩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차이 총통은 선거 전날 마지막 타이베이 유세에서도 홍콩을 거론하며 '민주주의의 보루'인 대만을 지키자고 호소했다.
그는 "홍콩의 젊은이들은 생명과 피로서 일국양제가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내일은 우리 대만의 젊은이들이 그들에게 민주자유의 가치가 일체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강조했다.
차이 총통은 홍콩 시위 초반부터 홍콩 시위대 지지와 일국양제 반대 의사를 선명하게 피력했다. 그 결과 작년 여름 무렵부터 차이 총통의 지지율이 국민당의 유력한 주자인 한궈위(韓國瑜) 가오슝 시장의 지지율을 뛰어넘으면서 '뒤집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수의 유권자들이 차이 총통을 재선을 택했다는 것이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는 어렵다.
일부 강경 독립파 인사들은 중국 본토에 뿌리를 둔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버리고 '대만'으로 국호를 바꿔 독립을 선언하자고 주장하지만, 다수 대만인들은 독립도 통일도 아닌 '현상 유지'를 가장 선호한다.
급진적인 독립 노선 추구로 대만 여론을 분열시키고 국제사회 내 고립을 자처한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과 달리 차이 총통은 내심으로는 독립을 지향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현상 유지에 방점을 둔 정책을 펴고 있다.
중국을 향한 다수 대만인의 요구는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겠다'가 아니라 '그냥 우리를 이대로 내버려 달라'에 가깝다.
대만이 먼저 중국을 자극한 것이 아니라 중국이 가만히 있는 대만에 일국양제를 강요하면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대만인들의 인식이다.
반대로 '중국 위협론'이 커진 가운데 안정적인 양안 관계를 바탕으로 온 국민이 돈을 잘 벌게 해주겠다는 메시지를 전면에 앞세운 국민당 진영은 선거 내내 수세적인 상황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이와 함께 미중 무역전쟁으로 대만이 뜻하지 않게 세계에서 가장 큰 수혜자가 된 점도 차이 총통의 재선에는 큰 호재로 작용했다.
미국의 고율 관세를 우려해 중국을 떠난 다시 대만으로 돌아오는 기업들이 늘어난 가운데 대만의 작년 3분기 경제성장률(2.9%)은 대만이 자주 비교 대상으로 삼는 다른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인 홍콩(-2.9%), 싱가포르(0.1%), 한국(2.0%)보다 높았다.
역대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는 안정적인 대미 관계도 차이 총통의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다.
무역전쟁 발발 이후 미중 관계가 악화하면서 미국에서는 중국 압박 카드로서 대만의 전략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
중국의 대만 군사 압박에 맞서 미국은 거의 매달 군함을 대만해협에 통과시키면서 중국의 대만 공격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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