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폐렴' 의심 中 여성, 격리 거부하고 홍콩 거리 활보

입력 2020-01-07 13:09
수정 2020-01-07 13:54
'우한 폐렴' 의심 中 여성, 격리 거부하고 홍콩 거리 활보

법정전염병 지정 안 돼 강제격리 못 해…당국, 법규 개정 추진

중문대서 의심 환자 3명이나 발생…총 21명으로 늘어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원인불명의 폐렴이 확산하는 가운데 홍콩에서 격리 치료를 거부하고 길거리를 활보한 환자가 발생해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7일 홍콩 명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지난 5일 한 중국 본토 여성이 발열 등의 증상을 호소하며 홍콩 완차이 지역의 한 병원을 방문했다.

지난 3일 우한을 방문했던 이 여성은 흉부 엑스레이 검사 결과 왼쪽 폐에 음영(陰影)이 있는 것이 발견됐고, 의료진의 권고로 입원했다.

하지만 이 여성은 이날 저녁 "호텔에 어린 딸을 놔두고 왔다"며 퇴원을 요청했고, 병원 측은 보건 당국에 문의 후 어쩔 수 없이 이 여성을 퇴원시켰다.

이 여성이 퇴원할 수 있었던 것은 우한에서 발생한 폐렴이 아직 '법정전염병'으로 지정되지 않아 이 여성의 격리 치료를 강제할 방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법정전염병은 전염력이 강하고 사망률이 높아 의심 환자 신고와 격리 치료를 의무화한 질병을 말한다.

이후 당국은 이 여성이 투숙했다고 주장한 호텔에 연락했지만, 호텔 측은 해당 여성이 투숙하거나 예약한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같은 날 오전에도 홍콩중문대에 다니는 본토 출신 여학생이 우한을 다녀온 후 발열 등의 증상이 생겼다며 사틴 지역의 한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다.

하지만 격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료진의 얘기에 이 여학생은 병원을 다시 나왔고, 이날 저녁 다른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10시간 동안 몽콕 등 홍콩의 번화가를 돌아다녔다.

심지어 홍콩과 이웃한 선전(深천<土+川>)을 방문한 후 다시 돌아오기까지 해 방역 체계의 구멍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빈과일보는 전했다.

정체불명의 폐렴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이 이처럼 홍콩 거리를 활보하자 거센 비판 여론이 일었고, 당국은 부랴부랴 법규 개정에 나섰다.

홍콩 당국은 이번 주 내에 관련 조례를 개정해 '심각한 신형 전염성 병원체로 인한 호흡기 계통 질병'을 법정전염병으로 지정, 우한 폐렴과 관련된 환자의 신고와 격리 치료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다만 일부 야당 의원은 이러한 조처가 인권 침해의 여지가 있다며 비판했다.



한편 최근 14일 이내 우한을 다녀왔다가 발열, 호흡기 감염, 폐렴 등의 의심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전날에도 6명 추가로 발생해 우한 폐렴과 관련된 홍콩 내 의심 환자의 수는 총 21명으로 늘었다.

특히 홍콩중문대에서는 최근 우한에서 공부하다가 돌아온 홍콩 학생과 2명의 중국 본토 출신 학생이 상기도감염(上氣道感染)과 기침 등의 증상을 보여 격리 치료를 받았다.

상기도감염은 코와 목구멍의 감염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편도염, 인두염, 후두염, 부비강염 등이 있다.

21명의 의심 환자 중 최연소자는 2세 여아이며, 최고령자는 65세 노인이다.

검사 결과 상당수 환자는 독감이나 코로나바이러스 등 이미 알려진 바이러스와 연관됐지 우한 폐렴과는 관련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격리 조처된 21명 중 7명은 병세가 호전돼 퇴원했다.

홍콩 의회인 입법회 의원들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대유행과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정부가 공항과 고속철 역에서 우한에서 돌아오는 승객들을 전수 검사할 것을 촉구했다.

2002년 말 홍콩과 접한 중국 광둥(廣東)성에서 처음으로 발병한 사스는 곧바로 홍콩으로 확산해 감염된 홍콩인 1천750명 가운데 299명이 사망했다. 중국 본토에서는 5천300여 명이 감염돼 349명이 숨졌다.

ssah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