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美·이란 대치로 중동 긴장고조…최악 시나리오 대비해야
(서울=연합뉴스) 이란 군부실세 거셈 솔레이마니에 대한 미국의 핀셋 제거를 계기로 중동 화약고가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미국은 지난 3일 드론을 이용,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 도착한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기습공격했다.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며 대중적 인기를 끌던 이란의 제2인자 솔레이마니는 이렇게 순식간에 제거됐다. 이란은 거세게 반발하며 보복 항전태세에 들어갔고, 이에 맞서 이번 '참수작전'을 재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이 보복 공격을 해오면 이란 내 52곳에 대한 대대적인 응징 공격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트럼프가 특정한 52곳은 이란이 장기간 인질로 잡고 있는 미국인 인질 수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새해 벽두부터 중동의 긴장지수가 최고조로 치달으며 전운에 휩싸인 형국이다.
미국이 여러 가지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군부 실세를 제거하는 극약처방을 한 배경을 놓고는 여러 갈래의 분석이 나온다. 먼저, 미국은 이라크와 레바논, 시리아 등 중동지역 내 미국인들을 표적으로 한 임박한 위협이 있었다고 밝혔다. 선제적으로 위협요인을 제거했다는 이른바 '정당방위론'이다. 미국은 지난달 27일 이라크에서 미국 민간인 1명이 로켓포 피격으로 사망한 사건을 그런 잠재된 위협의 시발점으로 간주한다. 지난해 오만해역 유조선 피습, 미국 드론 격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시설 공격 등의 사건 배후로 지목됐던 이란이 최근 민간인 사망 공격에도 개입했다고 본 것이다. 더 나아가 솔레이마니가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DC에 대한 공격까지 감행하려 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01년 발생한 9·11테러의 트라우마에 여전히 시달리는 미국으로서는 테러 예방 차원에서도 솔레이마니 제거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주장을 하는 셈이다. 정치공학적으로는 재선을 준비 중인 트럼프가 미 의회 탄핵국면을 돌파하고, 확실한 '힘의 과시'로 미국의 자존감을 끌어올려 대선 가도의 유리한 고지 선점을 꾀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경위와 배경이 어찌 됐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중동사태가 초래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일이다. 시장은 위험의 징후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척후병처럼 수치로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당장 국제유가와 금값이 크게 뛰었다. 3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2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3.1%(1.87달러) 오른 63.05달러로 장을 마쳤다. 지난해 5월 이후 약 8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안전자산인 국제 금값도 큰 폭으로 올라 약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란 원유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다고는 하나 마음 놓을 일은 아니다.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 가운데 30%가 오가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와 맞물려 우리 정부가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타결을 위한 우회 카드로 검토하는 청해부대의 호르무즈 파견 문제도 신중하게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생겼다. 지난 주말 워싱턴에서 성사된 한미 외교부 차관보 만남에서 호르무즈 파병 얘기가 거론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중동사태 향배에 따라선 우리 정부에 결정의 순간이 급하게 다가올 수 있다. 우리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선택지를 미리미리 준비해 놔야 미국의 압력에 밀려, 또 시간에 쫓겨 '나쁜 결정'을 하는 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번 중동사태가 한반도 안보 지형에 미칠 영향도 면밀하게 살펴봐야겠다. 미국은 과거 중동의 새로운 질서형성을 위해, 있지도 않은 대량파괴무기(WMD)를 연결고리로 사담 후세인 제거를 통해 이라크의 레짐 체인지, 즉 정권교체를 실천에 옮겼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최종 목표가 현재로선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으나, 이라크 당시와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북한에 주는 '묵언의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특히 북한은 후세인 당시의 이라크와 달리 실제로 핵과 미사일 등 WMD를 개발, 보유하고 있다. 북한이 새로운 전략무기 등을 언급하며 미국을 상대로 일전불사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대놓고 자극하고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같은 수단으로 자국의 본토가 공격당하는 상황을 가장 싫어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위협이 레드라인을 넘는다면 상당히 공격적인 태도를 취할 개연성이 있다. 미국이 이란 문제에 집중하는 틈새를 이용해 북한이 존재감 극대화를 위해 도발 내지 무력시위에 나서서는 안 되는 이유다. 우리 정부는 군사·경제 안보에 걸쳐 일어날 수 있는 중동사태의 최악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그에 맞춘 컨틴전시 플랜을 준비하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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