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붉은깃발'에 美 "전례없는 반격"…국제사회 외교전도 분주(종합)
佛·獨·英·中·러·중동 주요국, 중동 긴장완화 방안 협의
(테헤란·워싱턴·서울=연합뉴스) 강훈상 류지복 특파원 현윤경 기자 = 미국이 이란의 군부 실세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을 공습해 제거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양측 사이의 긴장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양국 지도자가 연일 '말폭탄'을 쏟아내고, 실제로 무력 충돌 가능성에 대비하는 듯한 조치들도 속속 실행에 옮기고 있어서다.
일각에서 전면전 우려까지 내놓는 가운데 긴장 완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외교전도 숨 가쁘게 펼쳐져 귀추가 주목된다.
◇ 트럼프 "이란이 우리 공격하면 최신 軍장비 보낸다"…미군 증파
이번 공습을 결정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주말 저녁 잇따라 트윗을 올려 이란을 향해 살벌한 경고를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이란은 오랜 기간 오직 골칫거리였을 뿐이었다"라며 이란이 미국인이나 미국의 자산을 공격할 경우를 대비해 미국은 이란의 52곳을 이미 공격 목표 지점으로 정해놨다고 밝혔다. 52는 이란이 오랫동안 인질로 잡은 미국인 숫자를 뜻한다.
이는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가혹한 보복" 경고에 재반격 위협을 가한 것이다.
트럼프 "이란 보복공격 땐 52곳에 반격할 준비돼 있다" 경고 (Trump, Iran, soleimani) / 연합뉴스 (Yonhapnews)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새벽 또 다시 트위터에 "그들이 우리를 공격했고 우리가 반격했다. 그들이 다시 공격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당해본 적이 없는 강한 공격을 가할 것"이라며 협박 수위를 올렸다.
그는 "미국은 2조달러(약 2천300조원)를 군사장비에 지출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단연 최고다!"라며 "이란이 미국 기지나 미국인을 공격한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최신 장비를 그들에게 주저 없이 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이날 중동 병력 증파에 본격 나서면서 이란의 보복 가능성에 대비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군 수백명이 4일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포트 브래그 기지에서 쿠웨이트를 향해 떠났다. 이들은 지난주 초반 바그다드 미국 대사관이 이라크의 친이란 시위대에 공격받은 데 따라 중동으로 긴급히 출발한 병력 700명과 합류할 예정이다.
미군 82공수부대의 대변인인 마이크 번스 중령은 이와 관련, "82공수부대 내 신속대응병력 3천500명이 수일 내로 중동에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 대미 보복 의지 확인한 이란…"이란 모든 국민이 복수할 것"
이란 역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란 중북부의 종교 도시 곰의 잠카란 모스크(이슬람 사원) 돔 정상에 4일 붉은 깃발이 게양됐다고 이란 국영방송이 보도했다.
잠카란 모스크의 붉은 깃발은 '순교의 피'가 흐를 격렬한 전투가 임박했다는 상징물이며 이는 이슬람과 이란이 적에 보내는 경고라고 이 방송은 해석했다.
붉은 깃발을 게양하러 온 종교 재단 관계자는 3일 미국의 폭격에 사망한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영정을 앞세우고 모스크 옥상까지 올라갔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살해한 미국에 대한 보복의 뜻으로 이 깃발을 게양했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유족을 조문한 자리에서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딸로부터 "누가 우리 아버지의 복수를 하느냐"라는 물음을 받자 "우리 모두다. 이란 모든 국민이 선친의 복수를 할 것"이라고 답변, 대미 보복 의지를 재확인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은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모른다"라며 "그들은 이번 범죄에 대해 엄청난 후과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4일 저녁 미군이 주둔하는 이라크 알발라드 기지와 미 대사관이 있는 그린존에서 잇달아 포격이 벌어져 긴장감을 높였다.
현지 언론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알발라드 기지와 그린존에 모두 3발의 로켓포가 떨어져 이라크 군인과 민간인이 여러 명 부상했다. 아직 공격의 주체임을 자처한 곳은 없지만, 이라크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PMF)의 소행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 서방·중동, 긴장완화 외교전 돌입…중·러는 미국 비난
위기감이 팽배해지면서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도 속도를 내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영국, 중국, 러시아 등 주요국과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에 든 중동 국가들은 요동치는 중동 정세를 논의하고, 긴장 완화 방안을 협의하는 등 분주한 외교활동을 전개했다.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우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4일 바르함 살리 이라크 대통령과 통화하고 중동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데 뜻을 함께했다.
엘리제궁은 마크롱 대통령과 살리 대통령의 통화가 끝난 뒤 "양국 정상이 추가적인 긴장 고조를 피하고, 이라크와 주변 지역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접촉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도 독일의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 중국 왕이 외교부장과 통화를 하고 중동에서 긴장이 더 이상 고조돼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았다.
3개국 외무장관은 중동의 안정과 이라크의 주권을 보호하는 것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는 한편 이란에는 핵합의 준수를 거듭 촉구했다.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이날 일간 빌트 일요판과 인터뷰에서 "상황이 더 악화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향후 며칠 안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유엔과 유럽연합(EU)에서 하려 한다"며 이란과 직접 대화를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영국 역시 중동 지역에서의 긴장 완화를 위해 모든 당사국이 자제력을 발휘할 것을 주문했다.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은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과 통화를 해 중동 상황을 논의했다며 "모든 당사국이 긴장 완화에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도미니크 랍 영국 외교장관은 이번주 초반 프랑스와 독일 외무장관들과 회동한 뒤 목요일인 9일 워싱턴으로 날아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중동 정세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아직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절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메르켈 독일 총리,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논의할 것이라고 총리실 대변인이 밝혔다.
미국의 이번 작전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이날 통화에서 중동 지역 긴장 고조를 둘러싸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양국이 협조할 사안을 논의했다.
왕이 부장은 국제관계에서 무력 남용을 반대하고 군사 모험주의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해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현 중동사태와 관련해 안보리에서 양국 간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중동 패권을 두고 이란과 다투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도 4일 압델 압둘 마흐디 이라크 총리와 통화해 중동이 직면한 정세 불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라크 총리실은 양국 지도자의 통화 후 "양국 지도자는 이번 사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파장을 완화해 전면적인 긴장 고조를 방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셰이크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카타르 외무장관도 전날 긴급히 테헤란을 방문해 로하니 이란 대통령,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 이란 입장에서 카타르는 미국과의 연락 채널이 될 수 있는 나라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