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다던 트럼프의 이란 도박…전쟁위기론 속 중동수렁 빠지나

입력 2020-01-04 04:54
수정 2020-01-04 07:30
전쟁없다던 트럼프의 이란 도박…전쟁위기론 속 중동수렁 빠지나

對중동정책 갈지자 대혼돈…발 뺀다더니 더 휘말리며 메가톤급 후폭풍

새해 벽두 '트럼프 리스크' 재연…대선 길목서 이란·북한 외교 중대 시험대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군부 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 사살로 '화약고'인 중동에 '메가톤급 폭탄'을 투하, 연초부터 국내외 정세를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트렸다. '트럼프 리스크'가 또한번 재연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이란 도박'은 '더는 세계의 경찰이 되지 않겠다'며 국제사회에서의 전통적인 미국의 역할에 대한 종지부를 선언하며 불(不)개입 주의·신(新)고립주의를 주창해온 그간의 기조와 정면 배치되는 것으로, 벌써 거센 후폭풍에 휩싸인 형국이다. 현재로선 이렇다 할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끝없는 전쟁(endless wars)의 종식'을 공언하며 지난해 10월 시리아 철군 등을 밀어붙였지만, 이번 사살로 인해 역설적으로 중동 지역에서 또 하나의 전쟁 가능성을 키우는 상황이 빚어지면서 대(對)중동 정책을 둘러싼 갈지자 행보와 전략 부재가 역풍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발을 빼겠다던 중동에 오히려 더 깊게 발을 담그는 상황이 연출되면서다.

미국민의 안전과 국익 보호를 명분으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지지층 사이에서는 '환호'를 불러왔지만, 미·이란 간 전면전 등으로 비화할 경우 재선 가도에 있는 그의 정치생명과 미국의 안전 자체를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새해 초부터 북한과 이란 문제가 '쌍끌이'로 불거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도 중대 시험대에 서게 된 모양새이다. 이란과의 전선이 '발등의 불'이 되면서 대북 대응 문제는 상대적으로 뒷전에 밀리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충동과 즉흥적 스타일인 그의 '예측 불허 성'이 리스크를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고개를 든다. 트럼프 대통령은 초당적 대응이 필요한 이번 국면에서도 사살 계획을 민주당 지도부에는 사전에 알리지 않아 강한 반발을 초래하는 등 탄핵정국 와중에 이란 문제까지 얹어지면서 대선 길목에서 국론 분열상이 더 극심해지는 양상이다.

미 NBC방송은 3일(현지시간) '트럼프의 이란 장성 공격은 끝없는 전쟁을 중단하겠다는 서약을 위태롭게 한다'는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지역 내 미국의 '끝없는 전쟁'을 끊임없이 비난하며 미군 병력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유권자들에게 말해왔다"며 그러나 이번 사살로 인해 미국은 또 하나의 물리적 충돌에 휘말리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는 중동 지역 내 미군 감축이라는 목표가 복잡한 과정이라는 점과 오랫동안 이어져 온 외교정책을 뒤집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해주는 대목이라고 이 방송은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동맹 쿠르드족을 헌신짝처럼 내버렸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시리아 동북부 지역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는 결정을 내렸지만, 이란과의 갈등 등의 여파로 이 지역에 병력을 추가 배치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미 국방부는 약 3천명 규모의 병력을 중동에 추가 배치하는 방안을 승인했다고 외신들이 이날 보도했다.

NBC방송은 미국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하는 방안 등을 놓고 협상을 진행해왔지만, 이 역시도 아직 타결되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AFP통신도 트럼프 대통령은 '더는 어리석은 전쟁은 없다'는 주문을 되뇌어왔지만, 이번 사살로 인해 대선을 1년도 채 안 남긴 시점에서 중동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느냐는 그의 능력 및 '전쟁은 없다'는 트럼프 독트린이 최대 시험대에 봉착하게 됐다고 전했다.

CNN방송은 '트럼프, 위험한 충돌에 몸을 맡기다'라는 기사에서 "이번 이란 군부실세 사살은 국민의 생명과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운명이 걸린 가장 위험한 도박"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엄청난 이란 도박은 지속적인 충격파를 낳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령 이란과의 전면전을 피하게 되더라도 미국,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국가안보 및 경제적 쇼크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란이 '가혹한 보복'을 공언한 가운데 중동과 유럽 내 미국민의 안전도 더 위협받게 됐다고 CNN은 지적했다.

CNN은 "중동지역 내 개입을 비난해오던 트럼프 대통령이 새해 벽두부터 미국을 거대하고도 알 수 없는 결과가 예상되는 또 하나의 분쟁에 빠트렸다"며 이는 탄핵과 억제되지 않은 행동 등으로 나라에 이미 분열을 초래한 그의 재임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나라를 하나로 결집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 있다면서 이번 사살은 미국의 전략적이고 도덕적인 기대치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당장 환호하는 모습이지만, 충격과 공포를 불러일으킨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보듯 득의양양한 분위기는 잠시일 뿐 군사적, 정치적 재앙의 장기화가 기다리고 있다는 게 미국 현대사의 교훈이라고 CNN은 지적했다. 이 방송은 "이란과의 극한적 충돌은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보다 훨씬 더 복잡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위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의 유산' 지우기의 일환으로 이란 핵 합의 파기 및 최대 압박 전술을 통해 이란을 옥죄면서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CNN은 지적했다.

지난해 6월 이란의 미국 무인기 격추에 보복 공격 승인 직전까지 갔다가 마지막 순간에 철회하는 등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한 대이란 정책이 혼선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제니퍼 루빈은 WP 기고 글에서 "트럼프는 솔레이마니 사살로 '전략적 모순'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며 "그는 이란의 미국 무인기 격추에 대한 보복 공격을 철회했고, 쿠르드족을 버리면서까지 영원한 전쟁에 끝을 내겠다며 시리아 철군을 발표했지만, 정작 병력은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는 전쟁 가능성을 완화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솔레이마니 사살로 중동 지역내 군사적 충돌 전망만 키웠다"고 덧붙였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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