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반정부시위대, 美대사관 반미 시위대와 거리두기"
"반이란 반정부 시위 기류에 영향 줄 수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라크 반정부 시위대가 최근 이틀간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벌어진 반미 시위와 거리를 두려 한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이라크 반정부 시위의 중심지인 바그다드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에 참여한 시민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분위기를 알 수 있다고 전했다.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알리 크라이비트(27)는 이 방송에 "미 대사관 앞 시위의 원인인 미군의 시아파 민병대 폭격의 책임이 미국이든 이란이든, 우리도 이를 규탄한다"라면서도 "타흐리르 광장은 평화로운 저항의 중심지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 대사관 앞에 모인 시위대는 우리를 대표하지 않는다. 우리는 평화로운 변화를 원한다"라고 강조하면서 "(미 대사관 공격으로) 바그다드가 혼돈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라고 덧붙였다.
다른 바그다드 시민 누르 알아라지(30)는 "미 대사관 앞 시위대는 우리를 대변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조심해야 할 시아파 정파 소속이다"라며 "이란과 미국의 계속되는 갈등으로 이라크 내 긴장이 고조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는 미 대사관 앞에 모인 사람들이 타흐리르 광장의 시민과 다르다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라며 "우리는 평화롭고, 그래서 우리가 미 대사관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라크의 반정부 시위는 지난해 10월 1일 시작해 석달째 이어지고 있다.
서방 언론은 이들이 시아파에 우호적인 현 정부의 부패와 무능을 규탄하고, 이란의 영향력이 큰 이라크 남부를 중심으로 시위가 벌어졌다는 점을 근거로 '반이란 시위'로 성격을 규정한다.
실제로 시위 과정에서 이라크 남부의 이란 영사관 2곳이 시위대에 공격받기도 했다.
시위대가 이란을 반대하는 기류가 강하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란뿐 아니라 미국 등 외세의 개입을 반대하고, 이들 주변국에 휩쓸리지 않은 독립적이고 전문 관료로 구성된 정부 수립을 원하는 시위라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지난달 31일과 1일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가 주도한 시위대가 미 대사관을 공격하면서 이런 기류가 변화할 수 있는 전망이 나왔다.
시아파 민병대가 이라크의 정규군이나 다름없는 정부 산하 군사조직인 만큼 미군의 폭격은 이라크의 국방 주권을 무시한 셈이고 이에 대한 반미 여론이 고조했기 때문이다.
미 대사관 공격으로 여론의 시선이 자칫 반정부 시위까지 사회를 혼란케 하는 불안 요소로 싸잡아 시위의 동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시위대가 우려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레너드 만수르 런던 채텀하우스 이라크 담당 국장은 알자지라 방송에 "타흐리르 광장의 시민과 미 대사관에 모인 군중과 구분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라며 "반정부 시위대가 미국의 개입에도 반대하지만 그들은 정치 기득권, 민병대, 군부에 저항하는 젊은층을 대변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 대사관 시위대는 정부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시아파 민병대와 정치 기득권을 지지한다"라면서도 "미 대사관 공격은 여론의 관심을 (반정부시위의) 정당성 논쟁에서 미국의 개입, 미군 철수 문제로 분산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이번 미 대사관 공격에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와 밀접한 이란이 개입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라크의 친이란 정부 교체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이란은 분위기를 반전하려고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생긴 미군의 폭격이라는 재료를 이용해 미 대사관 공격에 직·간접으로 관여했다는 것이다.
이란 정부는 이런 '이란 책임론' 또는 배후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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