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무역 전사' 나바로는 여전히 중국 응징 모색"
NYT "2주 전 경제 각료 회의서 나바로가 1단계 무역합의 반대"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중무역협상 1단계 합의 서명을 공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최고 무역 자문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은 여전히 중국을 응징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백악관 내 대표적인 매파로 꼽히는 나바로 국장은 2주 전 트럼프 대통령이 최고 경제 각료를 소집해 중국과 1단계 합의를 할지에 대해 의견을 구했을 때도 반대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당시 회의장에 있던 미 행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나바로 국장은 미국의 대중 관세 철회가 미국을 약하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으며 합의 찬성론자들을 "글로벌리스트"라며 몰아세웠다.
이는 지난 3년간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주의 본능을 부채질하고, 중국을 상대로 징벌적인 무역전쟁을 시작하도록 불 지핀 인물이 바로 나바로 국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신문은 평가했다.
나바로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래 '무역 전사' 역할을 자처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협상을 파기하고, 미국 노동자에게 더 유리한 쪽으로 이를 개정하도록 종용했다.
정부나 기업에서의 경험이 많지 않은 학자 출신인 나바로 국장은 세계화를 무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이용해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왕창 사기를 친다"는 인식을 부추기며 미국의 무역 정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나바로 국장의 견해라면 경청하던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이번에는 그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중국이 미국산 제품을 좀 더 구입하고 미국의 다른 우려 사항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하는 선에서 대중 관세를 일부 완화하기로 타협한 것이다.
1단계 무역협의안에는 나바로 국장이 밀어붙였던 구조적인 변화는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 안팎의 평가다.
중국어를 구사할 줄도 모르고, 지난해 백악관 대표단의 일원으로 방중한 것을 포함해 중국에는 단 두차례만 가본 나바로 국장의 이러한 대중 강경 행보를 미국 내 전문가들은 그동안 우려 섞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심지어 동료들조차 그의 반중 행보에 불만을 표하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바로 국장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는 것이 안팎의 평가다. 또한 대중 강경파인 그의 중국관이나 경제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이러한 정치적 논쟁을 가져온 부분에 대해서는 나바로 국장의 공을 인정하고 있다.
스티븐 무어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공화당 내 자유 무역론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하나 그는 이미 수년 전 중국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운 인물"이라며 "나를 포함해 더 많은 사람이 이제는 중국의 무역 정책을 위협적이고 해로운 것이라는 인식을 한다"고 말했다.
나바로 국장은 이미 중국을 대응할 다른 방법을 찾았다고 NYT는 평했다. 그는 올 초 미국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책정된 중국의 국제 우편요금을 문제삼아 중국을 공격하는가 하면 중국의 온라인을 통한 위조상품 유통 단속을 강화해 압박했다.
또한 미 해군이 중국으로부터 수송선을 조달하려한다는 이야기에 직접 나서 이 거래를 무산시킨 적도 있다.
NYT는 나바로 국장이 현재 일종의 '교차로'에 서 있으며, 새로운 대결 상대를 찾는 무역 전사와 같다고 비유했다.
중국은 물론 캐나다, 멕시코, 일본, 한국 등과의 무역협상이 타결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갈등 관계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서다.
또 나바로 국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궤도'에 '진입'한 것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며 캘리포니아대(UC) 어바인 캠퍼스의 경영학 교수 출신인 그가 민주당 후보로 샌디에이고 시장 등을 포함 선거에 다섯 차례나 출마했다가 떨어진 이력을 소개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만 해도 그는 낙태권, 동성애자의 권리, 환경 보호, 부자 증세 등을 지지하는가 하면 1996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대선 출마를 돕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샌디에이고 컨피덴셜'에서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가장 우아하고 똑똑하며 통찰력 있고 세련된 여성"이었다고 극찬한 적도 있다.
정치적 커리어가 좌초된 이후 계속해서 강단에 서며 경영과 투자에 대한 책을 집필하던 그는 어느 순간 중국과 중국의 무역 관행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미국의 일자리를 없애는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그의 이러한 회의론은 더욱 공고해지며 반중 성향의 책을 여러 권 집필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1년 자신이 좋아하는 책으로 손꼽은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Death by China: Confronting the Dragon)은 나바로 국장이 공동 집필한 것이다.
나바로 국장의 이러한 경제관이 당시 대선 후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의 이목을 끌면서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합류하는 계기가 됐다고 NYT는 보도했다.
한편 나바로 국장은 2주 전 각료 회의에서 1단계 무역합의 서명에 반대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미국의 이득과 내부 논의의 신성함 차원에서 집무실에서 일어난 일은 집무실 안에서 끝나야 한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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