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토반 속도제한 두고 독일 대연정 '치킨게임' 예고
사민당 "환경·운전자 보호" 시속 130㎞ 제한법안
기민·기사연합은 반대…"대연정 존속할지 시험대 될 듯"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초고속 질주를 허용하는 독일의 자동차 전용도로 아우토반의 속도제한을 두고 독일 연립정부의 양대 축이 치킨게임에 들어간다.
1973년 '석유 쇼크' 이후 처음으로 전체 아우토반의 속도를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법안을 놓고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과 사회민주당이 대립해 독일 대연정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엄격한 속도제한을 하는 유럽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독일 고속도로 약 3분의 2에서는 아무런 제한속도도 없어 운전자들이 마음껏 액셀을 밟을 수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대연정 내 다수파인 기민·기사 연합은 이런 전통이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소수파인 사민당 지도부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중의 우려를 지적하며, 아우토반 전체에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시속 130㎞의 속도제한을 둬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대연정에서 파열음이 나온 것은 3주 전 사민당이 자스키아 에스켄 등 좌파 성향의 정치인 2명을 공동대표로 선출한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대연정의 존속 여부에 대한 시험대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사민당은 아우토반의 속도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신년에 의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에스켄 사민당 공동대표는 "환경을 보호하고, (운전자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우토반의 규정을 다른 유럽과 보조를 맞추도록 할 때가 왔다"고 밝혔다.
그는 속도제한을 둠으로써 별도의 세금 투입 없이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연간 200만t까지 감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양은 독일의 연간 총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0.3%에 해당하는 것이다.
아우토반에 속도제한을 두는 것은 역사적으로 독일에서 민감한 주제로 꼽힌다.
아우토반 시스템의 초창기인 1934년 나치 독일은 시가지 구간에서는 시속 60㎞의 제한속도를 뒀으나 교외와 고속도로 구간에서는 속도제한을 하지 않았다.
제한속도 면제 규정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원유 부족으로 인해 철폐된 뒤 1949년 복원됐다. 유가가 평시의 4배로 치솟은 1970년대 초반에는 6개월 동안 다시 속도제한이 부활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독일의 환경 관련 기관이 아우토반에 속도를 제한하자고 제안했으나, 메르켈 정부는 당시 이를 일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우토반 속도제한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이라, 사민당의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10월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 국민 53%가 아우토반의 속도를 제한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는 45%에 그쳤다.
아우토반 속도제한에 반대하는 진영의 대표적 인물로는 안드레아스 쇼이어 교통장관이 꼽힌다.
쇼이어 장관은 속도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이 제한속도가 설정된 국도에 비해 더 안전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2013년의 경우 아우토반은 전체 교통량의 31%를 차지했으나, 전체 교통사고 사망의 17%만이 아우토반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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