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中 견제용' 美 중남미 투자프로그램 참여 문제로 고심
中-브라질 관계 영향 주목…구체적 투자계획 나오지 않아 타당성에 의문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특파원 = 브라질이 미국 정부 주도의 중남미 투자 프로그램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남미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려는 의도에 따라 추진되는 이 프로그램에 브라질이 참여하면 중국-브라질 관계가 미묘한 갈등 양상을 나타낼 수 있다고 브라질 일간 폴랴 지 상파울루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신문은 브라질이 조만간 미국 주도의 '미주 성장 이니셔티브(Growth in the Americas Initiative)' 참여를 위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미주 성장 이니셔티브'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맞서 미국이 지난해 내놓은 것으로, 중남미 지역의 전략 부문에 대한 투자 확대를 목표로 한 것이다.
발표 당시에는 에너지 분야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이후 인프라·정보통신 등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지금까지 아르헨티나·칠레·자메이카·파나마가 공식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고, 페루는 참여 절차를 밟고 있다. 브라질은 현재 법률적 검토 단계에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중남미 지역에 대한 민간투자 확대를 돕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밝히지 않아 '미주 성장 이니셔티브'의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예상되는 투자 규모도 중국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말 '미주 성장 이니셔티브'를 추진할 기구로 국제개발금융공사를 설치하고 600억 달러 예산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중국개발은행(CDB)과 중국수출입은행 등 국영은행을 통해 중남미 지역에 막대한 규모의 금융지원을 하고 있다.
중국개발은행 한 곳의 국제 금융지원 규모가 세계은행(WB)보다 50% 이상 많은 3천320억 달러로 추산되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이 중국의 물량 공세를 이겨내기는 어렵다.
미국 정부가 우려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브라질 5G 시장 진입이다.
브라질 정부는 내년 말께 5G 기술에 대한 국제입찰을 시행할 예정이다.
미국 정부는 안보상의 위험을 들어 화웨이의 진출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브라질 정부를 압박하고 있으나, 브라질 국가통신청(Anatel)은 화웨이의 5G 기술 진입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중순에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브라질리아 대통령궁에서 화웨이 브라질 법인의 최고경영자(CEO)를 면담했다.
미국이 '미주 성장 이니셔티브'에 정보통신 분야를 포함한 것은 화웨이의 진출을 막겠다는 뜻을 확인한 것이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 투자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한편, 브라질이 '일대일로'를 앞세운 중국의 투자 약속을 뿌리치고 미국의 손만 잡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칠레·자메이카·파나마·페루 등이 '미주 성장 이니셔티브'와 '일대일로' 양쪽과 모두 양해각서에 서명한 사실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지난달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제11차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기간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에게 1천억 달러 규모의 금융지원 의사를 전달했다.
브라질에 진출한 중국 금융기관을 통해 농업·제조업 분야에 대한 신용대출을 확대하고, '일대일로'와 브라질 정부의 투자협력프로그램(PPI)을 연계해 브라질 인프라 사업을 지원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달 초에는 브라질 정부가 추진한 대서양 심해유전 개발을 위한 국제입찰이 중국 기업들의 참여 덕분에 실패작이라는 비난을 피했다.
당시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의 무관심 속에 중국해양석유(CNOOC)와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의 자회사인 중국석유가스개발공사(CNODC)가 브라질 국영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와 컨소시엄을 이뤄 입찰에 참여했고 일부 광구의 개발권을 따냈다.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이지만,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을 제쳐두고 냉큼 '미주 성장 이니셔티브'에 올라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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