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이번엔 '남매의 난'이라니…한진家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

입력 2019-12-23 16:10
[연합시론] 이번엔 '남매의 난'이라니…한진家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

(서울=연합뉴스) 한진그룹 일가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동생인 조원태 그룹 회장의 경영에 불만을 품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조 전 부사장은 23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조 회장이 선친인 고(故) 조양호 전 회장의 유훈을 어기고 가족과 협의 없이 독선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면서 향후 다양한 주주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해나가겠다고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주주와 협력해 경영권에 도전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조 전 부사장이 내년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법률대리인을 통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은 가족 간 알력이 내부 협의로 조율할 수 없을 정도로 곪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지분은 조 씨 3남매와 모친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이 각각 5∼6%대,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KCGI가 15.98%, 델타항공이 10%, 반도건설이 6.28%를 갖고 있다. 한진가의 지분 구조가 매우 취약한 상황에서 이들 남매의 갈등이 심화할 경우 한진그룹 경영권이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주주들 간의 싸움으로 한진그룹의 경영권이 어디로 넘어가든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한진가가 보여주는 반성을 모르는 오만함과 국민 무시 행태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이날 동생의 그룹 경영에 요란하게 제동을 걸고 나선 조 전 부사장의 행동이 일반의 상식에 비추어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다. 그는 지난 2014년 승무원에게 갑질을 한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엄청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후 경영진에 복귀했다가 작년 4월 여동생인 조현민 칼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하자 조 전무와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 조 전 부사장은 명품 등을 밀수입한 혐의로 모친과 함께 기소돼 최근 항소심에서 징역 8개월과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았다. 자숙해야 마땅하다. 조현민 한진 칼 전무가 여론의 비판에 아랑곳없이 지난 6월 경영 일선에 복귀한 것이나 그룹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비상장 계열사인 정석기업 고문 자리에 앉은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도 염치없기는 마찬가지다. 고작 5∼6%의 지분을 갖고 기업을 주머니 속 공깃돌 다루듯 하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니 한진가가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의 주인 자격을 의심받는 게 아닌가.

국내 산업계는 전례 없는 수출 부진 등 안팎 악재에 시달리며 활로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항공업계도 경쟁 심화에 따른 실적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영난에 봉착한 저가 항공사는 주인이 바뀌는가 하면 대부분의 항공사가 감원, 경비 절감 등 마른 수건 쥐어짜기를 하고 있다. 대한항공도 임원 20%를 줄인 데 이어 직원을 대상으로 6년 만에 명예퇴직을 실시하는 등 내핍 경영을 하고 있다. 직원들은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친의 유훈을 빌미로 가족이 서로 욕심을 채우겠다고 경영권 분쟁을 벌이겠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한진가는 그동안 온갖 막장 추태로 고객과 직원들을 실망하게 했다. 국민은 재벌의 가족 간 경영권 다툼을 신물 나게 지켜봐 왔다. 롯데그룹 형제의 난이 가장 최근 버전이다. 이번엔 한진 패밀리가 신버전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우리는 한진가에 그 무슨 고매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하지 않는다. 더는 국민을 피곤하고 짜증스럽게 하지 말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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