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파나마 침공 30년…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

입력 2019-12-20 09:10
美 파나마 침공 30년…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

파나마 정부, 30년만에 처음 '국가 애도의 날' 선포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1989년 12월 20일 새벽 2만6천 명의 미군 병력이 파나마를 침공했다.

'정당한 명분 작전'(Operation Just Cause)으로 명명됐던 이 군사작전은 미군이 파나마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체포하면서 금세 끝났지만 많은 파나마인이 30년이 지나도록 상처를 안고 지내고 있다.

19일(현지시간) AP통신은 파나마 침공 30주년을 앞두고 실종자 가족들의 사연을 전했다.

수도 파나마시티에 사는 이리스 에레라(76)는 30년 전 남편과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군인이었던 남편 브라울리오 베탕쿠르트는 아내에게 "오늘은 내가 애들 데려올 수 없으니 일찍 가서 데려오는 것 잊지 말라"는 말과 함께 집을 나선 뒤 돌아오지 못했다.

에레라는 30년 동안 남편의 행방을 알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당시 미국은 마약밀매 혐의 등을 받는 군부 독재자 노리에가를 체포해 파나마에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고, 파나마 내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침공을 감행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탄했다.

노리에가가 머물던 파나마시티의 엘초리요 지역에 대한 공습으로 시작된 미국의 공격으로 300명가량의 파나마 군과 214명의 민간인이 숨진 것으로 집계된다. 미군 희생자는 23명이었다.

파나마 희생자 유족 단체들은 사상자 규모가 이 공식 집계보다 훨씬 많다고 주장한다.

숨진 이들은 묘지에 한꺼번에 묻혔다.

침공이 끝난 후 이름 모를 시체들을 다시 파헤쳐 신원을 확인했지만 에레라 남편처럼 아직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이들도 상당수다.

지난 2016년에야 희생자들의 정확한 규모와 신원 등을 파악하기 위한 진실위원회가 구성됐다.



학계와 법률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는 내년 초 파나마시티 묘지에 묻힌 시신들을 다시 발굴해 실종자 신원과 대조할 예정이다.

희생자 유족 단체의 대표인 트리니다드 아욜라는 AP통신에 "과거에는 유족들이 정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실종자를 찾아달라고 강력하게 항의하지 못했다"며 이제는 그러한 두려움이 덜해져 실종자를 찾아 나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30년 전의 기억은 많은 파나마인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공습이 있던 엘초리요 지역에 사는 올가 카르데나스는 "침공 이후 이 지역에 무기가 늘어나 폭력이 증가했다"며 "많은 아이가 공습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파나마 정부는 침공 30주년인 20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30년 만에 처음 이뤄진 조치다.

공휴일은 아니고 매년 12월 20일이 애도의 날이 된 것도 아니지만 유족들은 잊혀졌던 희생자들이 다시 추모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한걸음이라고 환영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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