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에게 묻다] '다학제 협진'이 대장암 치료 성공률 높인다

입력 2019-12-20 07:00
수정 2019-12-23 09:50
[명의에게 묻다] '다학제 협진'이 대장암 치료 성공률 높인다

맞춤형 치료전략 제시 효과 커…'MSI-H 유형'은 면역치료 시도해볼만

(서울=연합뉴스) 이명아 서울성모병원 암병원 대장암센터장, 김길원 기자 = #. 김모(65)씨는 건강검진 때 했던 대장내시경 검사에서 직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병원은 곧바로 여러 진료과 의사들이 치료에 참여하는 다학제진료팀을 꾸렸다. 회의에서는 김씨에게 표준치료법인 전신 항암화학요법과 함께 암세포가 처음으로 발생한 원발암 부위에 짧은 기간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약 2개월에 걸친 치료 후 김씨는 직장의 원발 병소뿐만 아니라 간의 종양 크기도 줄어들어 직장암과 간 전이암을 모두 절제하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 후 다시 항암화학요법과 표적치료제를 병행하며 전신 치료를 받은 김씨는 재발 없이 지내다가 최근 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 신모(68.여)씨는 대장암 3기로 진단돼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수술한 지 한 달도 안 됐을 때 보조요법 치료에 앞서 받은 검사에서 암이 간으로 전이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후 전신 항암화학요법과 표적치료제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약물을 두 차례 바꿨는데도 암은 계속 커지기만 했다. 결국 간뿐만 아니라 복막에도 암이 전이돼 장 마비 증상이 생기면서 음식을 먹을 수조차 없어 주사로 영양제를 공급하는 상황이 됐다.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해 전신상태가 나빠지자 장 마비 증상에 대한 수술은 합병증 위험 때문에 할 수 없었고, 부작용이 큰 항암화학요법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행히 유전자 검사에서 면역항암제에 반응이 좋은 'MSI-H형'으로 확인돼 면역항암제 치료를 시작했다. 6주기에 걸친 치료 후 간의 병변이 줄어들고, 심한 장 마비를 유발했던 복막의 전이 병변들도 거의 보이지 않게 될 정도로 좋아졌다. 덕분에 장운동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음식물 섭취도 가능해졌다. 치료를 마친 지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줄어든 종양은 다시 커지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대장암은 세계적으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암 중 하나로, 대표적인 선진국형 암이다. 우리나라도 식생활습관이 서구화되면서 대장암 발병 빈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대장은 크게 결장과 직장으로 구분되는데, 암이 발생한 부위에 따라 결장암, 직장암으로 나뉜다. 대장내시경 검사로 조기 진단이 가능하지만, 위내시경 검사보다 조기 검진율은 낮은 편이다. 이 때문에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대장암으로 진단받는 사례가 많은 편이다.

그렇다고 치료를 포기할 일은 아니다. 대장암은 전이됐다고 해도 전신 항암화학요법과 표적치료제에 반응이 좋으면 수술이 가능할 수 있다. 요즘은 예전처럼 항암제로만 치료하지 않는다.

이때 빛을 발하는 게 다학제 진료다. 물론 전이가 된 경우라면 주 치료는 전신 항암화학요법이다. 하지만 다학제 진료를 하면 종양의 유전자 돌연변이에 따른 표적치료제의 선택, 방사선 치료의 병용 여부, 수술적 절제술의 유용성과 부작용, 수술 시기, 수술 후 관리 등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다학제 진료팀에는 처음 대장암을 진단하는 소화기내과, 유전자 검사를 하는 병리과, 방사선 치료를 담당하는 방사선종양학과, 대장암을 수술하는 대장항문외과, 간이나 폐·난소 등의 전이 병변을 수술하는 간담췌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 전신항암화학요법을 전담하는 종양내과, 모든 진료 과정에서 종양의 반응과 위치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영상의학과·핵의학과 전문의들이 함께 참여한다.

이는 과거 단일 과가 모든 치료법을 결정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협진을 요청한 것과는 크게 달라진 점이다.

다학제 협진은 여러 과 전문의들이 환자의 상태를 공유하고, 현시점에서 가장 좋은 치료법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는 단순히 그동안의 임상 결과를 데이터로 통합해 제시하는 AI(인공지능) 접근법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협진팀의 특별한 치료 접근 방식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많은 고형암 환자에게 면역항암제가 치료제로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위장관 종양에서는 아직 폐암이나 흑색종만큼의 면역함암제 효과는 관찰되지 않고 있다.

대장암의 경우 국내 환자 중 MSI-H 유형은 약 5% 전후로 알려져 빈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 하지만 이 유전자형의 대장암이라면 앞서 사례로 든 신씨처럼 면역항암제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대상 환자는 표준치료제를 모두 적용했는데도 내성이 생겨 병이 진행되는 경우로, 유전자 검사를 거쳐 MSI-H 유형인지를 확인해 선별한다.

특히 이 면역항암제 치료는 종양의 진행 정도가 빠르면 면역반응을 유도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 전문의가 모인 다학제 협진에서 다각적인 논의를 거쳐 치료 방법을 도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이명아 교수는 1994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코넬대에서 세포·발달생물학 분야를 주제로 연수했다. 대장암, 간담췌암 분야에서 맞춤형 정밀치료로 명성이 높다. 가톨릭의대 종양내과 교수이자 암병원 대장암센터장, 종양내과 분과장, IRB패널위원장, 평가부장, 임상의료윤리위원회 부위원장, 가톨릭중앙의료원 임상지원센터 연구지원부장을 맡고 있다. 대한암학회 이사, 대한종양내과학회 심사위원장,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윤리이사 등 학회 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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