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2019] 日수출규제 韓통상 강타…민관 합심해 '전화위복'

입력 2019-12-18 07:10
[결산2019] 日수출규제 韓통상 강타…민관 합심해 '전화위복'

日수출실적 손실, 한국의 두배…'노 저팬' 차·패션·여행 매출 급감

韓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민낯 드러나…다변화·국산화로 '내실 강화'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이태수 최재서 기자 =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가뜩이나 좋지 않던 국내 제조업 수출이 하반기 들어 일본의 수출규제 강타를 맞았다.

일본이 7월 1일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대(對)한국 수출규제와 자국 수출절차 우대국인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의 한국을 제외한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한일 통상 관계는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수출관리를 둘러싸고 반년간 이어져 온 한일 간 갈등은 양국 무역에 모두 악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국내 주력 산업의 취약점을 새삼 깨닫고 산업 전반을 재정비하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 일본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반년만에 돌파구 모색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이 나오자 이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조치로서 7월 4일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의 대한국 수출제한 조치를 단행했다.

8월 2일에는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한국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된 수출무역관리령은 같은 달 28일부터 시행됐다.

일본은 이 같은 규제 조치를 취하면서 ▲ 양국 간 정책대화가 일정 기간 열리지 않아 신뢰 관계가 훼손된 점 ▲ 재래식 무기에 전용될 수 있는 물자의 수출을 제한하는 '캐치올' 규제가 미비한 점 ▲ 수출심사·관리 인원 등 체제의 취약성 등 3가지를 들었다.

대화로 풀자는 요구에 일본이 거부 또는 무대응으로 일관하자 한국 정부도 반격에 나섰다.

한국은 9월 11일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는 자유무역의 원칙에 어긋난다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고 같은 달 18일에는 일본을 한국의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전략물자 수출입 개정을 시행했다.

한일 양국은 WTO 무역분쟁 해결의 첫 번째 절차인 양자협의를 10월 11일과 11월 19일 두차례에 걸쳐 진행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평행선을 긋던 한일 통상관계가 전환점을 맞은 것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직전 극적으로 양국이 대화를 통한 해결의 장을 만들기로 하면서다.

청와대는 지소미아 종료 시점인 23일 오전 0시를 불과 6시간 남기고 '지소미아 종료 통보' 효력 정지와 함께 WTO 제소 절차 중단을 발표했다. 또 2016년 6월 이후 중단됐던 한일 수출관리 정책대화를 재개하기로 했다.

산업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은 과장급과 국장급 준비회의를 거쳐 16일 제7차 한일 수출관리 정책대화를 일본 도쿄(東京)에서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철회와 같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양국은 대화의 물꼬를 텄고 조만간 서울에서 8차 정책대화를 열어 다시 한번 해결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 '노 저팬' 열풍 속 한국보다 일본 더 큰 손실

일본의 수출규제는 미중 무역분쟁으로 가뜩이나 녹록지 않은 통상환경에 악재가 됐다.

한국의 7∼10월 대일본 수출은 101억9천만달러에서 94억8천만달러로, 7.0% 줄었다.

하지만 일본은 오히려 더 큰 역풍을 맞았다.

같은 기간 일본의 대한국 수출은 1조6천433억엔(약 150억1천만달러)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0% 감소했다. 3위 수출국인 한국으로의 수출을 규제하면서 한국보다 두배 더 큰 손실을 본 것이다.

여기에 한국에서 일본산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노 저팬'(No Japan) 바람이 불면서 자동차, 맥주 등 일본 주력품목의 매출이 급감했다.

그중에서도 일본계 패션 공룡 '유니클로'는 7월 오카자키 다케시(岡崎健) 최고재무책임자(CFO)가 국내 불매 운동을 두고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가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10월에는 후리스 25주년을 기념한 TV 광고가 위안부 피해자를 모독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며 결국 해당 광고를 내렸다.

연이은 구설로 소비자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동안 유니클로는 9월 신용카드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6.9% 감소한 91억원으로 떨어져 체면을 구겼다.

식품업계에서 불매 운동의 타깃이 된 제품은 일본 맥주였다.



수입 맥주 시장 1위를 호령하던 아사히 맥주는 여름부터 찾는 이가 뚝 끊기더니 급기야 주요 편의점에서 발주가 중단되고 이후 납품 가격까지 깎는 고육지책까지 내놔야 했다.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10월 일본 맥주 수입량은 3만5천8㎏, 액수로는 3만8천 달러(약 4천500만원)였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중량과 금액 모두 99% 이상 줄어든 수치다.

제품에 들어간 일본산 원재료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스마트 소비자'로 인해 일부 업체는 주요 재료의 원산지를 제3국으로 바꾸는 등 식품업계에서는 '일본 지우기'가 한동안 화두가 됐다.

관광업계에서도 불매운동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일본은 종래 우리 국민이 가장 즐겨 찾는 관광지 가운데 하나로 손꼽혔지만, 불매 운동의 여파로 현지를 찾는 한국 관광객은 7월 이후 4개월 연속 줄어들었다.

3분기 일본을 오간 항공 여객은 지난해보다 14.6% 줄었고 일본의 10월 여행수지 흑자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천189억원 급감했다.

◇ '위기를 기회로' 다변화·국산화 집중…"생산차질 없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양적 성장에만 치중해 온 한국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민낯을 드러냈다.

규제품목 중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는 90% 이상이 일본산이었고, 불화수소의 일본 의존도도 40%가 넘었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는 한국 산업을 돌아보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8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하고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예산, 세제, 금융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지원해 단기적으로는 수급의 어려움을 풀고 중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강화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는 100대 핵심 전략품목을 1∼5년 내 국내서 공급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혁신형 연구개발(R&D) 지원,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인수·합병(M&A) 자금 지원, 수입 다변화 등 쓸 수 있는 정책 카드를 모두 동원하고 총 45조원에 이르는 예산·금융을 투입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도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국산화율을 높이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특히 일본의 수출규제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됐던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는 소재 다양화에서 나름의 성과를 얻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국내외 액체 불화수소(불산액)로 일본 제품을 일부 대체했다. LG디스플레이도 국내 디스플레이·패널 공장의 불산액을 100% 국산화했고, 삼성디스플레이도 국산 불산액을 투입해 일본 제품을 부분적으로 교체했다.

국내 반도체 소재 업체인 솔브레인은 불산액 공장 증설 계획을 밝혔고 램테크놀러지도 2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시했다.

기체 불화수소(에칭가스)의 경우 아직은 일본산을 대체하지 못했지만, 유럽 등지의 제품을 지속 테스트 중이다. SK머티리얼즈는 인허가를 마친 뒤 연내 샘플 공급을 시작할 예정이다.

반도체 차세대 공정인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는 벨기에 제품 등이 시장 검증을 거친 상황이어서 대체 가능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세계 최초로 투명 폴리이미드(CPI) 필름을 양산하면서 폴더블 디스플레이에도 국산 소재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정부 관계자는 "민관이 합심해 수입처 다변화와 경쟁력 강화에 힘쓴 결과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국내 업계의 생산 차질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오히려 주요 거래처를 잃게 된 일본 업체가 더 궁지에 몰릴 수 있다"며 "일본 정부와는 별개로 현지 업체들은 한국 수요기업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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