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사랑…바티칸 노숙인들의 '동반자' 박야고보 수녀

입력 2019-12-16 07:31
국경 없는 사랑…바티칸 노숙인들의 '동반자' 박야고보 수녀

4년간 매주 음식 봉사·이야기 벗 돼줘…"내게 이 일은 순명"





(바티칸시티=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전 세계 가톨릭의 본산인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

화려하고 경건한 자태를 뽐내며 하루에도 수천 명의 순례객과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명소다.

하지만 어둠이 내리면 이곳은 '빈자들의 천국'이 된다. 집도, 의지할 가족도 없는 노숙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둘씩 모여든다.

많은 사람이 안온한 미래를 갈구하며 두 손을 모을 때 당장 그날 먹을 것과 추위를 견딜 방법을 걱정해야 하는 이들이다.

순례객과 관광객들 대부분은 그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일부는 혹시나 자신에게 다가와 돈을 요구하지 않을까 잔뜩 경계한다.

그렇게 그들은 드넓은 바다에 점점이 흩어진 외딴섬처럼 조용히 광장의 한구석에 몸을 기대 하룻밤을 청한다. 이는 성베드로 광장 주변에서 매일 펼쳐지는 밤 풍경이다.



그런데 그곳에 매주 목요일 저녁 어김없이 나타나 그들의 한 끼를 해결해주고 벗이 되어주는 한국인 수녀가 있다. '꽃동네' 소속 박야고보 수녀(본명 박형지)다.

야고보 수녀는 성베드로 광장 노숙인들 사이에 꽤 '지명도'가 높다. 광장에 상주하는 노숙인 치고 그를 모르는 이는 드물다.

그들은 편안한 친구를 대하듯 허물없이 수녀를 반긴다. '안녕하세요'라는 뜻의 'Ciao'(차오), 'Buona sera'(부오나 세라) 등 인사말과 함께 악수하고 포옹도 한다. 그늘진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야고보 수녀가 손수 장만한 주먹밥과 따뜻한 야채수프는 매 끼니를 고민하는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만찬이다. 목요일 저녁만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지난 5일 저녁 성베드로 광장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야고보 수녀는 "한 여성 노숙인은 너무 맛있다며 레시피(조리법)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그건 비밀이라고 말해줬다"며 웃었다.



야고보 수녀는 2002년 5월 유학생 신분으로 바티칸에 왔다. 교황청립 안토니아눔대학 학부에서 신학·철학을, 로마 그레고리안대학에서 영성신학 석사 과정을 각각 이수했다.

그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틈틈이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봉사 활동을 했다. 그것이 공부하는 유일한 이유이자 목적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2013년은 그의 인생에 하나의 전환점이 된 해다.

그해 8월 교황청 초대로 바티칸을 방문한 꽃동네 오웅진 신부가 거리에서 노숙인과 집시들을 보고선 그들을 돕는 일을 해야겠다고 말했고, 이는 야고보 수녀에게 '순명'(順命)이 됐다.

그는 2015년 10월 대학 기숙사에서 나와 작은 아파트를 하나 빌렸다. 그리고 노숙인을 돕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처음엔 걱정도 많았다. '정서상 거리감이 느껴지는 동양인 수녀로서 어떻게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해 11월 첫째 주 목요일 100인분의 주먹밥과 수프를 담은 카트를 끌고 처음 광장으로 나섰다. 혼자였다. 단 한 사람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만나는 모든 노숙인과 인사를 나눴고 100명 가까이 되는 그들의 이름도 외웠다.

경계하며 퉁명스럽게 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귀를 열었고 그들의 얘기를 귀담아들었다. 그것이 그들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절망적이고 안타까운 인생 스토리가 쏟아져나왔다.

수녀는 그렇게 함께 울고 웃으며 그들의 동반자가 되어갔다. 닫혔던 마음의 문이 서서히 열렸고, 덩달아 야고보 수녀의 마음도 넓어지고 깊어졌다.

야고보 수녀는 "단순히 가난하다는 말로 그들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들 하나하나는 극복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도 많지만, 집과 가족이 있는데 돌아가길 거부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의 상처 때문에 타인을 불신하고 스스로 사회와 격리하는 그들에게 오늘 당장 먹을 것도 중요하나 정작 필요한 것은 따뜻한 위로의 손길과 말 한마디"라고 강조했다.





야고보 수녀는 사시사철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4년간 매주 광장으로 나갔다. 노숙인들은 달력을 보지 않아도, 시계를 보지 않아도 수녀가 등장하면 그날이 목요일 저녁이라는 것을 안다.

야고보 수녀의 활동이 바티칸과 로마의 한국 가톨릭 교계에 입소문을 타면서 동참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의 여러 교구에서 온 신부 4명, 꽃동네 형제회 신부·수사 3명 등이 음식 장만을 돕고 매주 목요일 광장에도 함께 나선다고 한다.

야고보 수녀의 사연을 전해 들은 주교황청 한국대사관(대사 이백만)도 100인분의 닭강정을 만들어 보내주고 대사관 직원들이 광장에서 직접 봉사 활동을 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야고보 수녀는 외상이 있는 노숙인 등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장기간 거처를 제공하고 치료해주기도 한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8명이 수녀의 집을 다녀갔다. 몇 달씩 함께 생활한 이들도 있다.

지금도 이사벨이라는 50대 여성이 수녀의 집에서 함께 먹고 잔다. 야고보 수녀는 아들과 함께 노숙하던 그녀의 다리가 붓고 썩어들어가는 것을 보고 두 달 전 간신히 설득해 집으로 데리고 왔다.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병원에도 가지 않으려던 그녀를 정성스레 돌보고 치료했다. 처음엔 굳게 입을 닫았던 그녀도 지금은 농담을 건넬 정도로 친근해졌다. 앞으로 수녀와 같이 살고 싶다는 속마음도 털어놨다고 한다.

수녀의 집에서 마음을 치유한 한 여성 노숙인은 자력으로 광장을 벗어나 일상의 삶으로 복귀했다. 그는 지금도 가끔 수녀의 집에 놀러 와 얘기를 나눈다.

수녀는 "스스로 보람을 느끼려고 이 일을 하지는 않는다"며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음을 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분들이 나와 마주한 시간 동안 웃고 미소짓는 모습, 그것만으로도 그냥 행복하다"고 했다.

앞으로 계획이 뭐냐고 물었다. 계획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런 욕심 없이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소망이다.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하느님이 보내주신다고 믿고 있다.

수녀는 요즘 들어 더 자주 '하느님의 나라'를 생각한다고 했다. 하느님의 품 안에서 모든 사람의 마음에 사랑과 행복이 충만한 나라다.

"여기가 한국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국가의 경계는 내 마음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하느님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함께하려고 합니다." 수녀는 이 말을 남기고 다음 주 광장 방문 준비를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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