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몰린 이탈리아 연정…내부 분열 속 의원 3명 연쇄 이탈
극우 정당 '동맹'으로 이동…상원서 5석차로 간신히 과반 유지
'사실상 의원 매수' 비판도…출범 100일 자축은 커녕 위기감만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중도좌파 성향의 민주당이 손잡고 구성한 이탈리아 연립정부가 13일(현지시간)로 출범 100일을 맞았지만, 자축보다는 당장 하루 앞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정책 사안을 두고 연정 내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오성운동 소속 상원의원 3명이 차례로 탈당하면서 연정 유지에 필요한 과반 확보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라 레푸블리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오성운동 소속 우고 그라씨, 스테파노 루치디, 프란체스코 우라로 등 상원의원 3명이 최근 당을 떠나 극우 정당 동맹에 입당했다.
지난 9월 초 연정 출범 이래 상·하원을 통틀어 집권여당 의원이 야당으로 이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의 연쇄 이탈로 연정은 수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총 321석인 상원에서 겨우 5석 차로 과반을 간신히 유지하는 상황이다.
주요 정책을 놓고 연정 파트너끼리 의견 대립이 심화하며 가뜩이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제는 연정 구성의 물리적 기반인 의회 과반 확보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것이다.
특히 연정 내부에선 이들 의원이 연정의 최대 위협인 동맹으로 당적을 갈아탄 데 대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뉴스메이커' 마테오 살비니가 이끄는 동맹은 지난 8월 오성운동과의 연정을 파기하고 조기 총선을 노리다 오성운동-민주당의 전격적인 연정 구성으로 야당으로 내려앉았다.
이후 새 연정을 조기에 붕괴시키고 '우파 연합' 정권을 수립하려는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현 정부 정책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어왔다.
동맹은 현재 30% 초반대 지지율로 1위를 고수하고 있어 이대로 총선이 실시되면 원내 1당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
우파연합을 구성하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전진이탈리아(FI), 또 다른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과의 지지율 합은 50%를 넘나든다.
오성운동은 소속 의원의 연쇄 탈당과 관련해 동맹이 연정을 무너뜨리고자 대놓고 '의원 빼가기'를 한다며 강하게 비판한다.
오성운동을 이끄는 루이지 디 마이오 외무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맹이 '소 시장'을 열었다"며 "의원 한 명이 킬로그램당 얼마인지 가격표를 공개해야 한다"고 썼다. 동맹이 사실상 의원들을 매수했다고 비꼰 것이다.
해당 의원들의 당적 변경은 유럽연합(EU)이 제안한 유럽안정화기구(ESM) 개혁안을 둘러싸고 연정 내 갈등이 고조되는 와중에 이뤄졌다. 이들은 오성운동 내 대표적인 반개혁론자들로 알려졌다.
유럽안정화기구는 재정 위기를 겪는 회원국에 구제금융을 지원하고자 2012년 설립한 비상기금이다.
이 기금을 이른바 '유럽판' 국제통화기금(IMF)인 유럽통화기금(EMF·가칭)으로 바꾸겠다는 게 개혁안의 골자다.
이전에는 재정 위기 때 별다른 조건 없이 자금을 지원했지만, 앞으로는 긴축재정 등을 포함한 가혹한 채무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돈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긴급 자금 지원을 받기가 까다로워지는 셈이다.
ESM 개혁안은 특히 EU 역내에서 가장 심각한 공공채무를 떠안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거센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연정 내에서도 개혁안에 찬성하는 민주당과 반대하는 오성운동이 반목하며 연정 조기 침몰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찬성론자들은 이탈리아가 EU 일원인 이상 개혁안을 거부할 명분이 없고 이탈리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점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반대하는 이들은 개혁안을 받아들이면 이탈리아 경제의 EU 예속이 가속화하고 국가의 경제 자주권이 위협받게 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EU 탈퇴를 공공연히 주장하는 동맹이 개혁안 반대의 선봉에 섰다.
연정은 지난 11일 의회 승인 없이 정부가 독단적으로 개혁안에 서명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의회 상·하원에서 통과시키고 가까스로 갈등을 봉합했다.
연정 붕괴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언제든 다시 충돌할 수 있는 불씨는 남긴 셈이다.
EU는 이달 말 ESM 개혁안을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이었으나 이탈리아의 정치적 갈등으로 서명이 늦어지는 점을 고려해 내년 초로 합의 시점을 미룬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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