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대선 D-31] ②'중국이기 싫다'는 정서 확산…위기의 일국양제

입력 2019-12-11 08:00
[대만대선 D-31] ②'중국이기 싫다'는 정서 확산…위기의 일국양제

홍콩선 '반중·탈중' 고조…대만선 "一國도 동의 안 하는데 무슨 兩制"

덩샤오핑의 유산 계승해 통일위업 노리는 시진핑 '중국몽' 심각한 도전



(타이베이·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김철문 통신원 = 중국의 특별행정구인 홍콩, 중국이 자국의 일부로 규정하는 '미수복 지역' 대만에는 중국 본토와는 다른 공통점이 있다.

우선 문화적으로 두 지역 모두 중국 본토에서 쓰는 간략화된 한자인 간체자(簡體字) 대신 원래의 한자인 번체자(繁體字·대만서는 정체자[正體字]로 부름)를 쓴다.

정치적으로도 두 지역 모두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본토와 차이가 크다.

과거 장제스(蔣介石·1887∼1975)가 이끄는 국민당의 장기 독재가 이뤄진 대만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민주화 항쟁기를 거치면서 다당제와 자유·보통 선거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완전히 정착됐다.

홍콩도 지역 수장인 행정장관 선출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하지만 적어도 풀뿌리 단계에서는 보편적 민주 선거 제도가 운용 중이다.

중국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먼저 적용 중인 홍콩, 그리고 중국이 미래에 일국양제를 적용하려는 대만에서 모두 중국 본토를 멀리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대만 곳곳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레넌 벽'이 들어서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번체자를 쓰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번체 중화 지역'이 탈중국을 고리로 연대를 모색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2세대 핵심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이 중국의 통일 위업을 이루고자 마련한 이후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이 면면히 이어온 정치적 유산인 일국양제가 흔들리는 것이다.

일국양제의 위기는 올해 들어 홍콩에서 먼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7월 21일 밤 홍콩 도심에서는 중국 지도부가 '경악'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대가 중국 중앙정부의 연락판공실 건물 앞에 붙은 국가 상징 휘장에 검은색 페인트를 뿌린 것이다.

이 '국가 휘장 먹칠 사건'을 기화로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는 본격적으로 반중 시위의 성격을 강하게 띠기 시작했다.

이후 홍콩에서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훼손이 잇따랐다. 중국계 은행 지점과 베스트마트 360 등 중국 브랜드 간판을 단 상점들이 중국과 홍콩 정부가 '폭도'로 일컫는 과격 시위대에 파괴되는 일도 빈발했다.

시위 때마다 거리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중국공산당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포스터와 구호가 나붙는 등 '반중 정서'는 홍콩에서 들불처럼 번졌다.



중국 중앙정부는 '외부 세력'의 부추김 속에서 체제 전복을 추구하는 '색깔 혁명' 기도가 일어나고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사상 최대 투표 참여 속에서 최근 치러진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세력이 압승한 것은 적어도 다수의 홍콩 시민들은 현 상황에 큰 불만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홍콩의 반중·탈중국 정서는 내년 1월 대선을 앞둔 대만으로 빠르게 '전이'됐다.

시 주석은 연초부터 대만 무력 통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면서 일국양제 통일 방안을 받으라고 대만인들에게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이어 중국은 외교·군사·경제적으로 대만을 강하게 압박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는 평가다.

홍콩 사회를 대혼란으로 몰고 간 정치적 위기를 계기로 '홍콩은 대만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대만인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졌다.

최대의 정치적 수혜자는 재선 성공이 유력시되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다.

장촨셴(張傳賢) 대만 중앙연구원 정치학연구소 연구원은 연합뉴스에 "홍콩의 반송중(송환법 반대) 시위로 (대만인들이) 중국의 일국양제에 대한 반감과 우려를 갖게 됐다"며 "이에 따라 국민당에는 불리하게, 민진당에는 유리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만에서 중국 본토와의 통일이나 일국양제를 지지하는 여론도 사상 최저 수준이다.

대만민의기금회(TPOF)가 지난 6월 성인 유권자 1천92명을 대상으로 한 대만 독립 문제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양안(중국 본토와 대만)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응답은 13.6%에 그쳐 1991년 관련 조사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장 연구원은 "한 나라인지도 동의하지 상황에서 민중들은 일국양제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 중국의 울타리에 들어와 있는 홍콩에서 이어 '중화인민공화국'의 마지막 통일 대상인 대만에서도 반중 정서가 커지는 것은 스스로를 이미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에 버금가는 반열에 올려놓은 시 주석에게는 매우 뼈아픈 부분이다.

대만 통일이라는 역사적인 위업 달성은 마오쩌둥을 비롯한 어느 중국의 역대 최고 지도자도 이뤄내지 못한 사업이라는 점에서 시 주석이 대만 통일에 더욱 강렬한 의지를 불태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만 통일 완수는 중국공산당 창당이나 신중국 건국에 못지않은 역사적인 대업이라는 점에서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가리키는 '중국몽'(中國夢)에서 화룡점정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대만의 중국에 대한 경계심은 오히려 높아만 가고 있다. 지난달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장관)은 서방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성장 둔화세가 심각해지면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대만과의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장 연구원은 "중국의 무력이 대만의 '정부'와 '군대'를 무너뜨릴 수는 있을지언정 대만 인민을 와해시킬 수는 없다"며 "시진핑이 대만을 통일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민진당도 중화민국 국군도 아니라 여기에 중국과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 2천만 대만 민중이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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