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동맹 파열음…트럼프·마크롱 사사건건 대립·비방

입력 2019-12-04 11:20
대서양동맹 파열음…트럼프·마크롱 사사건건 대립·비방

나토 방위분담·터키 돌출행동·IS 뒷수습 '불협화음'

돌파구 브로맨스마저 마침표…70년 군사동맹 균열 생길지 주목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이하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또 한 번 상반된 시각을 드러내며 충돌해 양국의 오랜 동맹 관계까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무역정책부터 기후변화까지 사사건건 맞붙던 두 정상은 3일 영국 런던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서도 나토의 역할, 나토 동맹국인 터키의 위상,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문제를 두고 서로 불만을 터뜨렸다.

특히 반복된 나토의 방위비 분담 문제 외에 터키와 쿠르드족 간 갈등을 놓고 첨예한 의견 대립을 보여 양국 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는 것이 안팎의 평가다.

아울러 올해로 창설 70주년을 맞은 서방의 군사동맹인 나토에 균열이 불가피할 것으로 외신은 전망했다.



◇마크롱 "뇌사상태" 비판에 트럼프 "프랑스가 가장 필요" 반격

두 정상의 충돌은 나토 정상회의 전부터 예견됐다.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달 초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창설 70주년을 맞은 나토에 대해 '뇌사상태'라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과 나토 동맹국 사이의 협력과 미국의 리더십 부재 등을 언급하며 미국에 일차적인 책임을 돌렸다.

나토가 미국과 다른 회원국 간의 견해차를 조율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임을 지적한 것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무례하다"며 "(프랑스를 제외한 나머지) 28개 나라에 아주 못된 발언"이라고 반격했다. 프랑스의 "매우 높은 실업률"을 언급하고, "프랑스보다 나토를 더 필요로 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한 기자회견서 "우리는 함께 좋은 일을 많이 했다"며 다소 누그러진 발언을 했으나 마크롱 대통령은 "(뇌사상태라고 한) 그 발언을 물리지 않겠다"고 반박했다.

영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나토 회원국의 국방예산 증액 압박을 공언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서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지출 비율이 가장 높고, 일부 회원국은 나토의 가이드라인인 'GDP의 2%'보다 적은 액수만 지출한다며 "공정하지 않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심지어 국방예산을 충분히 끌어올리지 않는 국가들을 향해 '채무 불이행'이라는 특이한 계산법까지 써가며 이런 국가에 대해서는 "무역 측면에서 응대할 수도 있다"는 위협성 발언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이 나토에 대한 기여를 "과잉 부담"하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현재 GDP의 1.84%를 국방비로 쓰는 프랑스도 최소 기준을 맞춰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미 싱크탱크인 저먼마샬펀드의 브뤼셀 사무소를 지휘하는 이안 레서는 뉴욕타임스(NYT)에 마크롱 대통령의 '뇌사상태' 발언은 "미국의 리더십 상태를 말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전직 미 관료인 그는 "최소한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게 듣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나토를 돌려놨으며 프랑스의 수사는 이에 타협해 나온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터키·IS 문제 놓고 충돌…'브로맨스' 끝난 美佛 정상

양측의 입장 차는 터키를 둘러싸고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마크롱 대통령은 나토가 테러와의 전투를 포함해 폭넓은 목표를 추구하는 것을 지지하지만 "오늘날 공동의 적은 테러 단체들인데, 나는 우리가 테러리즘에 대해 같은 정의를 내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나토 회원국인 터키가 시리아의 IS 격퇴전에서 서방 동맹국에 협조해온 쿠르드 민병대를 공격한 것을 겨냥한 발언이다.

터키는 지난 10월 시리아 북동부를 장악한 쿠르드족의 민병대를 자국 내 쿠르드 분리주의 테러 조직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의 시리아 분파라고 주장하며 시리아 국경을 넘어 군사작전을 개시했으며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나토 회원국은 당시 터키의 군사작전을 강하게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어 "터키는 우리와 어깨를 맞대고 함께 싸웠고, 싸운 이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때로는 IS의 대리자들과 협력한다"면서 "터키는 이들 단체에 대한 애매모호한 사태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시리아에서 철군을 결정한 미국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기도 하다.

터키의 쿠르드 침공은 미군의 철수로 공백이 발생해 가능했다는 점에서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나토를 뇌사상태에 비유하는 발언을 하면서 미국이 나토 동맹국에 사전 통지하지 않은 채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서 철군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 아래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등을 돌렸다"고 언급한 바 있다.



두 사람의 설전은 시리아에서 체포된 유럽 출신 IS 전투원 처리 문제를 놓고 계속됐다.

평소 유럽이 이들을 책임지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출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마크롱 대통령에게 농담조로 "좋은 전투원을 데려가겠느냐. 줄 수 있다. 원하는 모든 사람을 데려가도 된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뼈있는 농담'에 "진지하게 하자"고 맞받아친 뒤 유럽에서 온 IS 전투원은 "극소수"이며 테러 조직을 제거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굴하지 않고 "내가 들은 것 중 가장 대단한 무가치한 답이지만 괜찮다"며 "그가 훌륭한 정치인인 이유"라고 비꼬았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의 회동 장면을 두고 '브로맨스'가 끝났다고 평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소원해지자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NYT는 "오래 끈 포옹과 양복 털어주기, 손바닥에 하얀 압박 자국이 남을 정도의 악수로 알려진 두 사람의 관계가 테러부터 무역 정책까지의 사안을 둘러싼 분열로 사라졌다"며 "이번에는 이 관계 악화가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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