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초강경 시위진압으로 40년만에 최악 위기"<NYT>

입력 2019-12-02 16:58
"이란, 초강경 시위진압으로 40년만에 최악 위기"<NYT>

"유가 인상이 촉발한 반정부 시위로 최소 180명 사망"

야권 지도자, 팔레비왕조 무너뜨린 1978년 대학살과 비교하며 맹비난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지난달 휘발유 가격 인상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로 이란이 1979년 이슬람혁명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발단은 지난달 15일 이란 정부가 휘발유 가격을 50% 전격 인상한 것이었다. 당일 밤부터 산발적으로 시작된 항의 시위는 시간이 지나면서 극심한 빈부격차와 경제난 등에 대한 불만이 더해지면서 점점 더 격렬해졌다.

성난 민심은 정부 퇴진을 요구하며 크고 작은 시위를 이어갔고, 이란 정부가 이에 대응해 가차 없는 강경 진압을 하면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가 지난달 23일 기준 이번 시위 사망자 수가 최소 115명이라고 밝혔으며, NYT는 이날 "최소한 180명이 숨졌고, 사망자는 최대 450명 이상일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시위대 대부분이 무직이거나 저임금에 시달리는 19~26세 젊은이들이며, 이란혁명수비대가 비무장 상태인 이들을 향해 발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목격자들과 의료진을 인용, 저임금 아랍인들이 모여 살아 전통적으로 반정부 성향이 강한 남서부 도시 마흐샤흐르에서만 이란혁명수비대원들이 130명을 사살했다고 덧붙였다.

혁명수비대가 교차로를 가로막은 수십명에게 경고없이 발포했고, 습지로 피신한 사람들을 에워싸고 총을 쏘고는 시체를 트럭에 쌓아 싣고 현장을 떠났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또한 반정부 단체와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이번 시위에 따른 부상자는 최소 2천명에 달하고 7천여명이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신문은 전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런 엄청난 사상자 숫자가 지난달 15~19일 불과 나흘간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란 반정부 시위는 당국이 지난달 16일밤부터 인터넷을 전면 차단하면서 급격히 위축됐다.

뉴욕에 본부를 둔 이란 인권센터 관계자는 "최근 이란 정부가 국민을 향해 가한 치명적인 폭력은 전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란에서는 10년 전인 2009년에도 부정 선거 논란에서 촉발된 시위와 그에 따른 강경 진압으로 72명이 사망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10여개월에 걸쳐 시위가 진압됐다.

NYT는 "이번 사태는 이란 지도자들에 대해 극도로 좌절한 민심의 폭발을 드러낸 것"이라면서 "아울러 미국의 강력한 이란 제재에서부터 불안한 중동 정세 속 인접국가들의 이란을 향한 분노에 이르기까지 이란 지도자들이 심각한 경제적,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제재로 석유 수출길이 막힌 이란 정부는 늘어만 가는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휘발유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

많은 이란인들은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를 향해 직접적으로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하메네이는 이번 시위를 미국이 사주한 공작이라고 주장하면서 강경 진압을 정당화했다.

이란 정부가 이번 시위에 따른 사상자와 구금자에 대한 확인을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압돌레자 라흐마니 파즐리 이란 내무장관은 시위에 따른 피해 규모만 발표했다.

파즐리 장관은 시위가 29~31개 주에서 발생했으며, 군기지 50곳이 공격당했고 은행 731곳·공공기관 10곳·종교시설 9곳·주유소 70곳·차 307대·경찰차 183대·구급차 34대 등이 파손됐다고 밝혔다.

이란은 1979년 2월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슬람원리주의에 입각한 이란이슬람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이란 야권 지도자 미르 후세인 무사비는 지난달 29일 인터넷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하메네이가 자행한 무차별 강경진압과 관련, 팔레비 왕조 붕괴를 촉발한 1978년 당시 정부군의 대학살에 비유하며 맹비난했다.

무사비는 2009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뒤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개혁파의 핵심 인물이다. 2011년 2차 반정부 시위를 시도한 이래 지금까지 줄곧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

NYT는 "정치 분석가들은 이번 시위가 이란 정치권에서 상대적으로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으며 2년 후 대선과 다가오는 의회 선거에서 강경파들의 승리를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전했다.

이어 "시위에 대한 초강경 진압은 이란 지도자들과 8천300만 국민의 상당수 간 균열이 굳어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고 논평했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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