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탐사기자 피살 사건 몰타 정권 흔드나…핵심인사 줄사퇴
총리 비서실장·관광장관 사임 발표…경제부장관은 업무 중단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2년 전 발생한 탐사보도 기자 피살 사건이 지중해 작은 섬나라 몰타의 정권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지지부진하던 경찰 수사가 최근 본격화하면서 사건에 연루된 정권 핵심 인사들이 잇따라 경찰에 소환되거나 직위에서 사퇴하는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26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조지프 무스카트 총리는 이날 자신의 비서실장인 케이스 스켐브리의 사임을 발표했다.
무스카트 총리는 스켐브리의 사임 이유를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으나,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치아 기자의 피살과 관련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갈리치아 기자(사망 당시 53세)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정치권이 연루된 각종 부정부패를 폭로해오다 2017년 10월 몰타 북부의 자택 인근에서 폭사했다.
이날 사임과 관련해 로이터는 소식통을 인용, 경찰이 스켐브리의 거주지를 압수 수색했다고 전했고, AFP 통신은 스켐브리가 최근 경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스켐브리의 사임 발표 몇시간 뒤에는 관광장관인 콘라드 미치가 사퇴를 공식화했다.
또 크리스티안 카르도나 경제부장관은 경찰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카르도나 장관은 갈리치아 기자 피살과 관련해 지난 23일 이미 경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스켐브리와 미치는 무스카트 총리의 측근 그룹에 속하는 인사들이다.
과거 몰타 최대 거부로 꼽히는 유력 기업가 요르겐 페네치와의 유착 의혹이 제기돼 야권과 갈리치아 기자의 유족들로부터 거센 사임 압력을 받아왔다.
페네치는 갈리치아 기자 피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난 20일 경찰에 체포된 인물이다.
그는 체포된 뒤 형사 책임 면제 등을 조건으로 해당 사건에 대해 아는 바를 얘기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스켐브리도 페네치의 진술에 따라 용의 선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페네치가 사업 과정에서 정계의 여러 유력 인사들을 후원했다는 소문이 무성한 만큼 수사 향배에 따라 무스카트 내각이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갈리치아는 죽기 8개월 전 페네치가 두바이에 설립한 '17 블랙'이라는 정체불명의 회사를 통해 정계 고위 인사들에게 뒷돈을 건넸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갈리치아 기자 암살의 중간 실행자 역할을 한 용의자로 지난주 체포된 또다른 인물이 무스카트 총리로부터 사건의 유력한 물증을 제공하는 대가로 면죄부를 받기로 함에 따라 어떤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나올지 관심을 끈다.
그가 이미 사건 배후 인물의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 녹음 파일을 경찰에 넘겼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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