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경찰·시위대 달라졌다…강대강 충돌 대신 '평화적 대치'

입력 2019-11-26 14:22
수정 2019-11-26 17:17
홍콩 경찰·시위대 달라졌다…강대강 충돌 대신 '평화적 대치'

초강경 진압하던 경찰, 범민주 압승에 '온건 대응' 급선회

시위대도 '제도권 내 승리' 이어가려는 듯 폭력시위 자제해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24일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을 거둔 후 홍콩 경찰과 시위대 모두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의 강경 대응 결정 후 시위대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을 서슴지 않던 홍콩 경찰은 야당의 선거 압승 후 '온건 대응'으로 급선회하는 모습이다.

시위대도 '제도권 내 승리'를 잃지 않고 내년 입법회 선거에서 승리를 이어가려는 듯 폭력시위를 자제하고 있다.



◇시위대 구타·체포하던 홍콩 경찰, 이제는 지켜보기만

지난달 말 19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홍콩에 대한 강경 정책을 결정한 후 홍콩 경찰의 시위대에 대한 대응은 말 그대로 '초강경 대응'이었다.

홍콩과기대 2학년생이 시위 현장에서 추락해 지난 8일 숨진 데 이어 11일에는 21살 학생이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았다. 시위대 '최후의 보루'로 불린 이공대와 그 인근에서 17∼18일 이틀 동안 체포된 사람은 무려 1천여 명에 달했다.

범민주 압승 후 홍콩 이공대 시위 현장…경찰이 달라졌다? / 연합뉴스 (Yonhapnews)

지난 22일 강경파인 크리스 탕이 홍콩 경찰 총수인 경무처장으로 취임한 후 진압의 강도는 더욱 세져 경찰은 '점심 시위', '인간 띠 시위' 등 시위가 벌어지기만 하면 무조건 진압에 나섰다.

심지어 경찰 버스가 시위대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진압 작전까지 펼치는 바람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하지만 24일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전체 452석 가운데 400석 가까이 휩쓰는 압승을 거두자 경찰의 태도 또한 180도 달라졌다.

25일 저녁부터 26일 새벽까지 이공대 인근 침사추이, 훙함 등에서 1천여 명의 시민들이 이공대 내 시위대에 대한 지지 시위를 벌였지만, 경찰은 이를 지켜보기만 할 뿐 진압이나 체포 작전에 나서지 않았다.

일부 시민들이 경찰에게 다가가 격한 비난을 쏟아냈지만, 예전 같으면 당장 최루 스프레이를 뿌리고 곤봉으로 구타했을 홍콩 경찰은 전날 밤에는 맞대응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전날 저녁 이공대 인근에서 목격한 경찰의 무장 태세도 지난주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주 이공대를 봉쇄하고 있던 홍콩 경찰은 'MP5' 돌격용 자동소총, 'AR-15' 자동소총, 'SIG 526' 돌격용 반자동소총 등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해 말 그대로 '폭도'들을 진압하러 나선 모습이었다.

하지만 전날 저녁 이공대를 막고 있던 경찰은 권총, 최루 스프레이, 곤봉 등으로 주로 무장해 화력의 수준을 크게 낮춘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아가 홍콩 경찰은 이공대 내 시위자가 미성년자가 아닐 경우 무조건 체포하겠다던 방침을 바꿔, 시위자가 나올 경우 이를 체포하지 않고 신상정보만 기록하겠다는 유화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시위대도 폭력시위 대신 '평화시위'로 기조 전환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의 압승은 홍콩 시위대의 시위 방식에도 상당한 변화를 불러왔다.

지난주 이공대 내와 그 인근 시위에서 시위대는 화염병, 돌 등을 던지며 경찰과 격렬하게 맞섰다. 심지어 이공대 내 시위대는 활, 투석기 등까지 동원해 '전쟁터'와도 같은 상황을 연출했다.

하지만 전날 밤 이공대 인근 시위는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됐다. 범민주 진영의 압승으로 시위가 격화할 것이라는 일부의 예상은 빗나갔다.

일부 시민들이 이공대를 봉쇄한 경찰과 격한 언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시위대는 이공대 주변에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는 등 비폭력 시위를 벌였고 화염병 등을 던지는 모습은 목격되지 않았다.

이는 구의원 선거 압승이라는 시위대가 애써 얻은 '제도권 내 승리'를 폭력시위를 통해 망치지 말고, 내년 9월 홍콩 의회인 입법회 선거까지 이어가려는 마음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껏 구의회, 입법회 등 제도권 정치를 친중파가 장악하고 있어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염원이 실현될 통로가 없었지만, 이제 구의회를 범민주 진영이 장악한 만큼 제도권 내에서도 희망이 생겨났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전날 홍콩 시위대의 토론방인 'LIHKG'에는 구의원 선거 압승에 자만하지 말고 시위대의 요구를 관철하고, 나아가 내년 입법회 선거에서도 승리를 거두자는 많은 글이 올라왔다.

만약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이 내달 8일 열겠다고 예고한 대규모 집회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발생하지 않은 채 끝난다면 평화시위 기조가 정착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8일 집회에서는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할 방침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시위대 내에서도 내년 입법회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이는 폭력시위가 과연 시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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