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시민단체 "한일 정부간 징용문제 협의과정에 피해자 포함해야"

입력 2019-11-24 19:54
日시민단체 "한일 정부간 징용문제 협의과정에 피해자 포함해야"

도쿄서 '징용피해자 인권회복' 심포지엄…'합의안 당사자 수용' 기본원칙 제시

"한국 대법원판결은 세계적 판결…아베 정부는 존중하고 日기업은 배상해야"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한일 간 최대 쟁점인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당사자 의견을 듣는 등 피해자 측이 관여토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본에서 나왔다.

양국 정부가 아무리 좋은 합의안을 도출하더라도 피해 당사자가 수용할 수 없는 것이라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국 정부가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조건부로 연장한 것을 계기로 한일 대립의 근원인 징용소송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 간 교섭이 앞으로 본격화할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지적은 주목된다.

가와카미 시로(川上詩郞) 변호사는 일본 시민단체 연합인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 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이 24일 오후 도쿄 '시고토'(일자리)센터 지하강당에서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징용 피해자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한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가와카미 변호사는 "어떠한 국가 간 합의가 나와도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진정한 해결책이라 할 수 없고 소용없는 일이 될 것"이라며 양국 간의 문제 해결 '프로세스'(과정)에 피해자가 관여토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제인권법이 보장하는 수준도 충족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한국인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 일본 정부의 강제동원 사실인정과 사죄 ▲ 사죄 증거로서의 배상 ▲ 다음 세대로의 계승(강제동원 사실에 관한 역사교육) 등 3가지라며 이 가운데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와카미 변호사는 이런 전제 위에서 징용 문제 관계자라 할 수 있는 일본·한국 정부, 일본가해기업, 한국수혜기업 등 4자가 각각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만 징용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해 가해 기업인 일본제철 등에 위자료 배상을 명령한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선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도 밝혔다.

한국 대법원판결이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보고 정치가 구제하지 못한 개인의 침해된 권리를 회복한 것이라고 정의한 가와카미 변호사는 징용 피해자 문제를 사법적으로 해결하는 데 청구권협정이 장애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근거로 2007년에 나온 일본 최고재판소의 관련 판결과 일본 정부의 종전 입장도 개인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며 도리어 입장을 바꾼 일본 정부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요시자와 후미토시(吉澤文壽) 니가타(新潟)국제정보대 교수는 한국 대법원 배상 판결의 요지로 ▲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과 원고에 대한 일본기업의 반인도적 불법 행위 인정 ▲ 가해자인 일본기업에 대한 피해자의 개인청구권 인정 ▲ 이들 문제가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은 사실 확인 등 3가지를 들고는 일본 정부가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요시자와 교수는 일본 정부가 기업(피고)과 피해자(원고) 간의 문제를 한일 양국 간 이슈로 둔갑시켰다고 지적했다. 청구권협정을 어겼다는 주장으로 '무법성'을 부각하면서 한국 정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수법을 썼다는 것이다.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비롯한 현 일본 정부 인사들이 징용 피해자를 '구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라고 부르는 것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며 후퇴한 역사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공동행동'은 이날 심포지엄에서 "한국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이 식민지주의의 극복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 세계사적인 판결"이라고 평가하고 이 판결의 존중 및 사죄와 반성을 아베 정부에 독촉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울러 일본제철 등 피고 기업에는 일본 정부의 뒤에 숨지 말고 가해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와 배상을 조속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곤도 쇼이치(近藤昭一) 입헌민주당 중의원 의원은 이날 행사에 메시지를 보내 "전후 74년이 지났어도 남겨진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인권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전시노무동원 피해자 모든 분의 마음에 확실히 다가서는 해결을 목표로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모토무라 노부코(伸子) 공산당 중의원 의원은 "일본이 과거에 범한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어떻게 마주할지는 국제사회, 특히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과제"라며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해 진지한 반성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또 "일본 정부는 피해를 본 분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존엄과 명예를 회복해 준다는 입장에서 냉정하고 진지한 대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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