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뜨거운 선거 열기…'친중정부 심판' vs '폭력 종식'
700만 홍콩 민심 내일 윤곽…'야권 유리' 관측 있지만 결과 지켜봐야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예전엔 이런 선거를 본 적이 없습니다. 현재 상황 때문에 투표는 매우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저처럼 느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홍콩 위엔룽 지역의 풍캄 스포츠 센터에 마련된 투표소 앞에서 줄을 서 있던 찬(31)씨는 로이터 통신에 이렇게 말했다.
452명의 구의원을 뽑는 홍콩 선거가 전례 없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홍콩의 도심 지역인 센트럴과 카오룽에서부터 중국 본토와 가까운 신계(新界)의 외곽 지역 위엔룽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투표소에 유권자들이 몰렸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유권자들이 투표하는 데 한 시간 이상 기다릴 정도로 줄이 길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오후 1시 30분(현지시간) 현재 152만명이 투표해 이미 2015년 구의원 선거 때의 전체 투표자 수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전체 홍콩 시민 700여만 중 등록 투표권자는 413만여명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구의원 선거 투표율은 2015년의 47%를 크게 웃돌 것이 확실시된다.
홍콩의 올해 구의원 선거 열기가 이처럼 뜨거운 것은 이번 선거가 단순한 풀뿌리 지방의원 선출이 아니라 향후 홍콩 정국의 향배를 가를 결정적인 분수령이 될 수 있어서다.
이번 구의원 선거는 지난 6월 이후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 반년째 이어져 온 가운데 홍콩인들의 민심을 드러내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홍콩 사회가 친중과 반중 진영으로 쪼개져 극한 대립을 이어온 가운데 선거 결과에 따라 균형추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이번 투표는 그간 시위대의 분노가 집중됐던 캐리 람 행정장관이 이끄는 현 특별행정구 정부에 대한 신임 투표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다른 한편으로는 홍콩 경찰의 강경 진압과 장기화하는 사회·경제적 혼란 속에서 점차 약화하는 홍콩의 민주화 요구 시위에 대한 시민 다수의 지지도를 가늠할 기회이기도 하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번 선거는 반정부 시위 지지의 바로미터이자 캐리 람과 그의 팀에 대한 사실상의 국민투표"라고 의의를 부여했다.
홍콩의 야권 세력은 6개월간 이어진 민주화 요구 시위의 바람을 타고 선거 압승을 통해 정국 주도권을 쥐고 반정부 투쟁의 동력을 이어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지난 2003년 국가보안법 사태 직후 치러진 구의원 선거에서도 범민주 진영이 반정부 시위 흐름을 타고 승리한 바 있다.
구의원 후보로 출마한 민간인권전선의 지미 샴(岑子杰) 대표는 SCMP에 "(선거는) 우리의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세계에 우리의 선택을 말하고, 캐리 람은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번 선거에서 야권이 더 유리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야권이 과반 의석 달성까지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정치적 대의 측면에서는 민주주의 확대와 경찰의 지나친 폭력을 규탄하는 시위대와 야권이 도덕적 우위의 고지를 차지하고 있지만 장기화하는 홍콩의 혼란은 '일반 시민'들에게 피로감을 주는 것 역시 현실이다.
현재 홍콩 전역의 구의회를 장악한 친중파 진영은 최근 시위대의 폭력에 반감을 가진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이 이날 투표를 통해 표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간 홍콩에서는 민주화 요구 시위대의 주장이 강력히 표출되면서 현재의 홍콩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거나 혼란보다는 안정을 선호하는 성향의 시민들 목소리가 분출되기 어려운 구조였던 것도 사실이다.
홍콩 민주화 요구 시위는 초기에는 최대 수백만 명까지 참여해 평화적인 모습으로 진행되면서 폭넓은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찰의 강경 진압 속에서 시위대 역시 상점 파괴와 도로 교통 마비 등 폭력을 행사하면서 온건·중도층의 참여가 줄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위로 도시의 상업·교통 기능이 마비되는 일이 잇따르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급감하고 홍콩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의 불황에 빠졌다. 홍콩의 아시아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홍콩 정부는 반정부 시위가 폭발하는 계기가 된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을 공식 철회하는 한편 강경 시위대를 '소수의 폭도'로 규정하는 등 시위를 주도하는 강경파와 '일반 시민'의 거리를 떼어 놓으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처럼 복잡해진 홍콩의 현실에서 시민들의 '본심'은 최종적으로 투표함을 모두 열어봐야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는 이날 밤 10시 30분까지 진행된다. 따라서 선거 결과는 25일 아침 무렵에나 확인이 가능할 전망이다.
ch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