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의 '바이오' 뚝심 도전…국내 첫 독자개발 신약 결실

입력 2019-11-22 08:37
수정 2019-11-22 08:55
최태원의 '바이오' 뚝심 도전…국내 첫 독자개발 신약 결실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 FDA 신약 승인…27년간 한우물 성과

"제2, 제3의 혁신 신약개발 계속 추진"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기자 = 1993년 SK가 신약개발에 뛰어든 후 사반세기 넘도록 물러서지 않고 뚝심있게 밀고 나간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봤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시험 통과,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독자적으로 해내는 성과를 일궈냈다.

바이오는 고성장, 고부가가 예상돼서 누구나 탐내는 영역이지만 쉽게 발을 들이밀기는 어려운 분야다. 통상 10∼15년이라는 긴 기간과 수천억 원 이상의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고도 5천∼1만개 후보물질 중 단 1∼2개만 신약으로 개발될 만큼 성공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단기 재무성과가 중요한 기업에서 경영진이 흔들림 없는 의지로 끌고 가지 않으면 해내기 힘든 일이다. 다른 기업들이 이런 이유로 실패 가능성이 낮은 복제약 사업을 할 때 SK는 혁신 신약개발에 계속 매달렸다.



최태원 회장은 2016년 6월 경기도 판교에 있는 SK바이오팜 생명과학연구원을 찾아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20년 넘도록 혁신과 패기, 열정으로 지금까지 성장해 왔습니다. 글로벌 신약개발 사업은 시작할 때부터 여러 난관을 예상했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꾸준히 투자해왔습니다. 혁신적인 신약 개발의 꿈을 이룹시다"라고 구성원들을 격려했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나 22일 새벽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XCOPRI®, 성분명: 세노바메이트)가 FDA 신약승인을 받으며 그 꿈은 이뤄졌다.

독자개발 신약 하나 없는 한국에서 '신약 주권'을 향한 진전도 시작됐다.

세계 뇌전증 치료제 시장은 2018년 61억달러(약 7조 1천,400억원) 규모에서 2024년까지 70억 달러(약 8조 2천억원) 규모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SK그룹의 신약개발 씨앗은 선대 최종현 회장이 대덕연구원에 관련 팀을 꾸리면서 뿌려놨다. 1998년 9월 취임한 최 회장은 이를 이어받아 발아시키고 열매까지 만들어냈다.

최 회장이 바이오 사업에 비전을 제시한 것은 2002년이다. 신약 개발에서 의약품 생산, 마케팅까지 모든 단계를 통합해서 독자 사업 역량을 갖춘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을 키워내겠다는 것이었다. 2030년 이후엔 바이오를 그룹의 중심축으로 세운다는 장기 목표를 내놨다.

그러면서 그 해에 생명과학연구팀, 의약개발팀 등 5개로 나뉜 조직을 통합해서 신약 연구에 집중토록 하고 다양한 의약성분과 기술 확보를 위해 중국과 미국에 연구소를 세웠다.

2007년에 지주회사 체제 전환할 때도 신약개발 조직은 분사하지 않고 지주회사 직속으로 뒀다. 신약개발은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그룹 차원에서 받쳐줘야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SK는 최 회장의 강력한 의지로 수천억 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이듬해 SK는 뇌전증치료제 '카리스바메이트'가 출시 문턱에서 미끄러지는 실패를 겪었다. 임상 1상 완료 후 존슨앤존슨에 기술수출까지 한 상태였다. 최 회장은 이 때 오히려 미국 연구소를 강화하고 업계 최고 전문가들을 데려오는 등 더 힘을 실었다.

2011년엔 신약개발 사업 조직을 분할해서 SK바이오팜을 출범시켰다. SK바이오팜 현지법인이 된 미국 연구소(SK라이프 사이언스)는 그동안 쌓아온 역량을 토대로 이번에 엑스코프리 임상을 주도했고 발매 이후에는 미국 시장 마케팅과 영업도 맡을 예정이다.

SK는 신약개발에 더해 역시 고성장 산업인 원료 의약품 생산으로도 영역을 확장했다.

2015년에 SK바이오팜의 원료 의약품 생산 사업부를 물적분할해서 SK바이오텍을 설립했다. 1998년부터 특허 만료 전의 고부가가치 원료의약품을 글로벌 제약사들에 수출해온 경쟁력에 주목한 것이다.

이후 SK바이오텍은 2017년 글로벌 메이저 제약사인 BMS(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의 아일랜드 생산시설을 인수했다. 국내 원료의약품 생산 기업이 해외 생산설비를 인수한 첫 사례였다. 2018년에는 SK㈜가 미국의 위탁 개발·생산 업체인 앰팩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글로벌 인수합병(M&A)에 한 획을 그었다. 6월엔 앰팩 버지니아 신생산시설 가동이 시작되면서 한국-미국-유럽의 글로벌 생산기지가 모두 전면 가동에 돌입했다.

이어 의약품 생산사업 지배구조를 단순화해서 시너지를 높이기 위해 SK바이오텍과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앰팩을 통합해서 SK팜테코를 세웠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이항수 PR팀장은 "SK 신약개발 역사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을 거듭해 혁신을 이뤄낸 사례"라고 말했다.

SK는 엑스코프리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제2, 제3의 세계적인 신약 개발을 지속할 방침이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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