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일 초등학교 저학년에 '서예수업' 확산
'집중력 향상 효과' 톡톡, 물로 쓰고 마르면 지워지는 '특수용지' 이용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붓을 똑바로 세우고 팔꿈치를 책상에서 확실하게 위쪽으로 들어올린 후 부드럽게 붓을 놀려라"
태블릿 단말기 등 교육현장의 디지털화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초등학교 저학년 교과과정에 '서예(붓글씨)'를 정규 과목으로 도입하는 일본 초등학교가 늘고 있다. 자세와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담아 붓을 잡는 전통문화를 통해 집중력과 학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이치(愛知)현 가스가이(春日井)시립 도리이마쓰(立鳥居松)초등학교 1학년 서예수업시간. 바른 자세로 앉은 채 공중에 붓으로 원을 그리는 연습을 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게 한 후 직선과 곡선을 긋거나 사다리 또는 소용돌이 모양, 동그라미 등을 습자지 5장에 나눠 깨끗하게 쓰게 하는 수업이 진행됐다.
먹물은 사용하지 않는다. 붓에 물을 묻혀 쓰면 먹으로 쓴 것 처럼 글자가 드러나는 특수용지에 쓴다. 마르면 글자가 없어지기 때문에 반복해 사용할 수 있다. 먹물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교실이나 옷을 더럽힐 염려도 없다.
아이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등을 곧게 편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신중하게 붓을 놀린다. 잡담소리는 일절 들리지 않는다. 지도강사인 히키타 기요미(疋田喜代美)는 "손목을 굽히지 말고 팔로만 쓰라"고 주의를 주며 교실을 돈다.
가스가이 시내에서 40년 가까이 서예교실을 운영해 오고 있는 히키타씨는 "전에는 서예가 어린이들의 단골 학습메뉴였지만 요즘은 영어와 댄스 등에 밀리고 있다"면서 "붓은 손의 감각과 강약을 배우고 미(美) 의식과 집중력을 익히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담임교사인 가토 아야네(加藤彩稔)도 "아이들이 침착해져 다른 과목에서도 조용히 수업에 집중한다. 서예수업의 효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사히(朝日)신문 최근 보도에 따르면 헤이안(平安)시대의 서예 대가 오노노 도후(小野道風) 출신지인 가스가이시는 2011년 문부과학성의 교육과정 특례학교 지정을 받았다. 지정학교는 보통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하는 서예수업을 1학년부터 할 수 있다. 2016년에는 시립초등학교의 거의 전부인 37개교로 확대했다.
1,2학년 국어 등의 수업을 줄여 1학년은 연간 34시간, 2학년은 35시간을 서예수업에 각각 할애하고 있다. 이중 5~6시간은 외부 서예교실 선생 등 전문가를 강사로 초청해 진행한다. 빈 교실을 활용하고 서예전용 교실을 설치한 학교도 많다.
시 교육위원회에 따르면 보호자들에게서 "집중력이 좋아졌다", "글자를 정성들여 쓰게 됐다"는 등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담당자는 "아이들이 서예를 좋아하도록 가르쳐 예의와 집중력을 길러줌으로써 다른 과목의 학력향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1학년 수업에 서예를 처음 도입한 곳은 시즈오카(靜岡)현 이토(伊東)시다. 이토시는 2006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서예교육특구로 지정됐다. 현재는 수업준비시간을 활용해 시립초등학교 10곳 모두에서 서예수업을 하고 있다. 1, 2학년생은 연간 12시간으로 시내에 잇는 서예전문학교에서 강사를 초빙해 수업을 진행한다.
이토시는 "잘 듣고 잘 참고 매사 정중하게"를 교육목표의 하나로 내걸고 있다. 시 교육위원회 담당자는 "현장 선생님들에게서 아이들이 집중력을 갖고 이야기를 듣게 됐다"거나 "글씨를 쭉쭉 쓰게 됐다는 등의 효과가 보고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서예수업 도입은 홋카이도(北海道) 히로마에초(弘前町), 히로시마(廣島)현 구마노초(熊野町) 등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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