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코 IPO 흥행부진…왕세자 탈석유경제 청사진 구겨지나
로드쇼 대거 취소…중동·中·러 '지역행사' 전락 조짐
기업가치 거품 지적…FP "경제다변화 자금조달에 타격받을 수도"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사상 최대 기업공개'(IPO), 'IPO의 지존' 등으로 불리며 주목받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 IPO가 뚜껑을 열고 보니 그 규모나 반응이 기대를 훨씬 밑도는 모습이다.
20일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거품 낀 가치평가와 산적한 위험 요인 등을 그 원인으로 꼽으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IPO로 인해 사우디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탈(脫)석유 경제 청사진도 좌초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앞서 이달 17일 아람코는 주당 30∼32사우디리얄(약 9천400∼1만원)에 지분 1.5%를 공개한다고 발표했다.
이로부터 환산된 기업가치는 1조6천억∼1조7천억달러(약 1천900조∼2천조원)이다.
이대로 실현된다면 아람코는 역대 '최대 가치' 기업으로 기록되겠지만, 예상 공모가 발표에 앞서 무함마드 왕세자가 장담한 '2조달러 기업가치'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해외 투자자들의 반응도 미지근해 공모주식 대부분이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중국, 러시아 기관투자자나 사우디 개인에게 팔릴 것으로 점쳐진다.
FP는 사우디 당국이 아시아, 유럽, 미국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투자자 대상 '로드쇼' 행사를 취소했다고 전하면서, "사우디 '왕관의 보석' 공개 잔치는 크게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고 (실제로는) 지역 행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망스러운 IPO 경과의 원인으로는 투자자보다 훨씬 높게 잡은 가치평가가 첫손에 꼽힌다.
해외 기관 투자자들은 아람코의 적정 가치를 1조2천억∼1조5천억달러로 매기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저가 매수로 차익 실현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아람코의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면 엑손모빌 등 경쟁사보다 아람코의 수익성을 높게 쳐주는 것이 되며, 무역전쟁 같은 세계 경제 여건과 유가 전망에 비춰 투자자들이 그런 높은 값에 공모에 참여하지는 않으리라고 FP는 내다봤다.
원유 생산량, 유전 개발 예산, 비축 매장량 등에 관한 결정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투자자들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각각의 결정에 따라 사우디의 지정학적 영향력과 투자자 이익 사이에 충돌이 생길 수 있다.
숙적 이란과 계속되는 충돌, 왕실 비판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 등도 투자자에게 부정적 요인으로 거론된다.
아람코를 넘어 석유 산업 전반에 관한 전망도 예전만 못하다.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나 기후변화 대응에 따른 규제 강화 가능성도 크다.
아람코 IPO로 조성되는 자금 규모가 줄면 무함마드 왕세자가 야심 차게 제시한 경제 청사진 '사우디 비전 2030'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FP는 전망했다.
사우디 비전 2030은 석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사우디 경제를 다변화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실현하는 데 드는 자금은 아람코 IPO 등 국내외 투자 유치로 조달할 계획이다.
사우디 발표대로 IPO가 실현된다면 조성되는 자금은 250억달러(약 30조원)로 예상된다. 역시 무함마드 왕세자의 기대에 크게 모자란다.
알짜 기업 아람코에 대한 미지근한 해외 반응은 다른 투자 유치도 순탄치 않으리라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사우디 정부가 현금이 모자라 IPO를 서두른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놨다.
2011∼2014년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은 유가는 이후로 40∼70달러에 묶여 있다.
사우디는 사회 안정을 위해 막대한 보조금 집행을 유지해야 하고 예멘 내전에도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처지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에너지애스펙츠의 석유 부문 수석 애널리스트 암리타 센은 "무함마드 왕세자는 현금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며 "내 예상에, 아람코 공모는 수입을 올리려는 의도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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