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지소미아종료 목전서 방위비 지렛대로 주한미군 카드 꺼내나
美국방 "예측이나 추측 않겠다"…'미국인 필요성 물어' 합참의장 발언 이어 파장
'포스트 지소미아' 美 전방위 압박 예상 속 향배 주목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류지복 특파원 = 미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놓고 한국을 거칠게 몰아세우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19일 주한미군 감축 관련 질문에 "나는 우리가 할지도, 하지 않을지도 모를 것에 대해 예측이나 추측을 하지 않겠다"며 여지를 두는 듯한 언급을 하면서 주한미군 감축·철수 카드를 방위비 협상의 지렛대로 꺼내 들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전방위적 방위비 압박은 오는 23일 0시를 기해 효력을 상실하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목전에 두고 이뤄진 것으로, 미국 측의 '포스트 지소미아' 대응과 맞물려서도 주목된다.
미국 측이 지소미아 종료 현실화시 한층 더 두터워진 '청구서'를 한국에 들이 내밀며 파상공세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주한미군 카드까지 얽힐 경우 한미동맹 방정식도 더 까다로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필리핀 방문 중 기자회견 질의응답을 통해 나온 에스퍼 장관의 언급은 미국측이 서울에서 진행된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3차 협상 이틀째인 이날 협상장을 박차고 나간지 몇 시간 만에 이뤄진 것이다.
그는 '한국=부자 나라' 프레임도 되풀이하며 '더 많은 기여'를 거듭 주장했다.
앞서 지난 15일 서울에서 채택된 제51차 SCM(한미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에는 에스퍼 장관이 현 안보 상황을 반영하여 주한미군의 현 수준을 유지하고 전투준비 태세를 향상시키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는 내용이 적시돼있다.
'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를 공동성명이라는 공식 문서를 통해 재확인한지 불과 나흘 만에 '애매모호한 화법'으로 불확실성을 키운 셈이다. 주한미군 문제의 예민함과 그 언급의 파장을 미 국방장관이 모를 리 없는 상황에서다.
몇시간 전 SMA 협상의 미국 수석대표인 제임스 드하트 국무부 선임보좌관은 협상 결렬 뒤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 한국측에 '새 제안'을 가져나오라고 대놓고 요구하는 등 이례적으로 장외 압박전까지 벌였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이날 SMA 협상 종료후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현재 상황에서 공은 한국 측에 있다"고 가세했다.
협상 도중 박차고 나와 '판'을 깨는 것은 지난 2월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보듯 '거래의 달인'을 자임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를 몰아붙이기 위해 구사해온 전형적인 '벼랑 끝 전술'이다.
정은보 한국 수석대표는 협상 종료 후 방위비 문제와 연계한 주한미군 감축·철수 가능성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논의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미묘한 여운을 남긴 에스퍼 장관의 발언으로 한미 간 방위비 갈등의 '불똥'이 주한미군 문제로 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재점화되는 양상이다.
이른바 '방위비 협상-주한미군 감축' 연계론이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는 모양새인 셈이다. 앞서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이 지난주 한일 연쇄 방문길에 "보통의 미국인들은 주한·주일미군을 보며 왜 그들이 거기에 필요한지, 얼마나 드는지 등을 묻는다"고 언급,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연장 선상에서다.
주한미군 감축·철수 문제는 지난 2016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더는 세계의 경찰 노릇은 하지 않겠다'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동맹보다 돈의 가치를 우선시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신(新)고립주의와 맞물려 미 조야에서도 늘 불안감을 거두지 못한 소재였다.
더욱이 북한이 '선(先) 적대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가운데 주한미군 문제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서 언제든 떠오를 수 있는 '뇌관'이라는 우려가 미 조야 내에서 제기돼온 게 사실이다.
SMA 미 협상팀이 회의 시작 80분 만에 판을 깨고 나오고 미 국방수장이 한미동맹의 근간인 주한미군 감축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는 듯한 모습을 연출할 정도로 미 측이 전례 없는 고강도 압박에 나선 것은 그 자체로 종료가 임박한 지소미아 유지에 대한 압박 차원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미국 측이 지속해서 재고를 촉구해온 지소미아 종료가 현실로 다가올 경우 미국 측이 한국을 향해 취할 대응의 '파고'를 짐작케 한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지소미아 문제와 관련, "마지막 순간까지 종료 사태를 피할 수 있는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밝혔으나 일본의 태도 변화가 없이는 '출구'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이날 결렬로 향후 SMA 협상 전망이 험로를 예고하는 가운데 미국 측은 지난 8월 한국이 종료 결정을 발표했을 때를 뛰어넘는 강도높은 공개 반응을 보이는 것 외에 '방위비 폭탄' 공세 수위도 더욱 높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자동차 고율관세' 등 다른 현안을 연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미측이 당장 눈에 보이는 '보복성' 행동에 나서지 않더라도 중장기적으로 한미동맹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지소미아 종료와 방위비 협상이라는 양대난제를 만나 한미동맹이 시험대에 오른 양상이다.
hanks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