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53년 만의 최악 물난리…"복구에 수천억원 예상"(종합2보)

입력 2019-11-14 03:56
베네치아 53년 만의 최악 물난리…"복구에 수천억원 예상"(종합2보)

도시 80% 이상 물에 잠겨…1천200년 역사 산마르코성당도 침수

감전 등으로 2명 사망…선박 60여척 파손, 시내 전역 휴교령

伊 전역 이상 기후로 몸살…북부는 폭설, 남부는 호우 피해



(서울·로마=연합뉴스) 이영섭 기자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 전역이 폭설·폭우 등 이상 기후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세계적인 관광지이자 수상 도시인 베네치아가 53년 만에 최악의 침수 사태를 겪었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과 로이터·dpa통신 등에 따르면 베네치아의 조수 수위가 12일 오후(현지시간) 기준으로 최대 187cm까지 치솟았다. 이는 194cm에 육박했던 1966년 이후 53년 만에 가장 높은 것이다.

조수가 급상승하면서 전체 도시의 80% 이상이 침수된 것으로 당국은 파악했다.

루이지 브루냐로 베네치아 시장은 트위터를 통해 조수에 의한 극심한 피해 상황을 언급하며 "베네치아가 (수해에) 무릎을 꿇었다"고 썼다. 그는 이번 사태가 기후변화의 결과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베네치아가 속한 베네토주(州)의 루카 자이아 주지사도 "과장이 아니다. 도시의 80% 이상이 침수됐다. 피해는 상상 이상이다. 우리는 '종말론적인' 완전한 파괴에 직면했다"라고 전했다.

베네치아 의회는 중앙 정부에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현지 ANSA 통신은 전했다.



조수의 급상승으로 도시 대부분이 물에 잠기면서 인적·물적 피해도 속출했다.

78세 남성이 집에 들어온 바닷물을 빼내려고 펌프기를 작동시키려다가 전기합선으로 감전사하는 등 2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베네치아가 자랑하는 인류 문화유산도 수해의 직격탄을 맞았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유럽의 응접실'이라고 극찬한 산마르코 광장이 1m 이상 물에 잠겼고, 9세기에 세워진 비잔틴 양식의 대표 건축물인 산마르코대성당에도 바닷물이 들어찼다.

산마르코대성당이 침수 피해를 본 것은 1천200년 역사상 이번이 6번째라고 한다. 이 가운데 네차례는 최근 20년 사이에 집중됐다.

산마르코대성당은 마르코(마가) 복음서를 쓴 성 마르코의 유해가 안치된 곳으로 유명하다. 868년 처음 건축됐다가 화재로 소실된 뒤 1천63년 재건축됐다.

대성당은 조수 수위가 156㎝까지 다다른 작년 10월에도 침수돼 내·외벽 대리석을 교체했는데 이번에 또다시 물에 잠기는 비운을 맞았다.

특히 값어치를 따지기 어려운 성당 내부의 중세 모자이크와 타일은 물론 성 마르코 유해가 안치된 지하실도 침수를 피하지 못해 문화재 관리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대성당 지하가 침수된 것은 역사상 이번이 두번째라고 AP 통신은 전했다.

베네치아의 프란체스코 모랄리아 주교는 과거에 이 정도의 재난을 겪어본 적이 없다면서 "산마르코대성당이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심의 역사지구는 바닷물에 휩쓸린 음식점의 식탁, 의자, 각종 쓰레기, 건물 잔해 등이 나뒹굴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명사들이 머물고 간 곳으로 유명한 그리티 팰리스 호텔도 저층이 침수돼 투숙객들이 새벽에 긴급 대피하는 등 소동이 일었다.

바닷물에 떠밀려 올라온 선박들이 거리 곳곳에 드러누워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베네치아 당국은 이번 수해로 바포레토(수상버스) 등의 교통수단을 포함해 최소 60여척의 선박이 파손된 것으로 파악했다.

당국은 아울러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이날 하루 시내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린 상태다.

브루냐로 시장은 "피해 규모가 수억유로(수천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문화부 고위 간부는 "물이 찬 현재로서는 피해 규모 산정이 불가능하다. 피해 액수를 정밀하게 따져보려면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전했다.



베네치아는 비가 많이 내리는 매년 늦가을과 초겨울 조수가 높아지는 이른바 '아쿠아 알타'(조수 상승) 현상으로 시내가 정기적으로 침수된다. 조수 수위가 100∼120㎝를 오르내리는 것은 일반적이며 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구조화돼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근 수일째 호우가 지속한 가운데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시속 100㎞의 강한 바람을 동반한 열풍으로 조수가 급상승하며 피해를 키운 것으로 기상당국은 파악했다.

일각에서는 매년 조수 상승으로 반복되는 침수 피해를 막고자 1984년 설계된 '모세 프로젝트'의 완공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십억유로 규모의 모세 프로젝트는 베네치아를 조수로부터 보호하는 장벽을 설치한다는 계획으로, 우여곡절 끝에 2003년 첫 삽을 떴으나 자금난과 부패 스캔들 등으로 아직 마무리되지 못했다.

베네치아 외에 알프스산맥을 낀 이탈리아 북부는 12∼13일 사이 40∼50㎝의 눈이 내려 교통이 통제됐다.

이탈리아 남부도 연일 이어진 강우로 수해가 났다.

나폴리 등 남부 일부 지역은 휴교령을 내렸고 마테라에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동굴주거지가 침수됐다. 시칠리아섬 주변 일부 도서는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 때문에 접근이 통제된 상태다.

younglee@yna.co.kr, lu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