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랄레스 물러난 볼리비아 '안갯속'…권력공백 속 혼돈 심화

입력 2019-11-12 01:10
모랄레스 물러난 볼리비아 '안갯속'…권력공백 속 혼돈 심화

부통령·상하원 의장 줄사퇴에 후계 구도 불확실

정부 기능 마비…계속되는 시위 속 방화·상점 약탈도 잇따라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14년 가까이 집권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물러난 볼리비아가 '시계 제로'의 혼란 속에 빠졌다.

당장 누가 위기의 볼리비아를 이끌지도 불확실한 상태에서 대선 이후 두드러진 볼리비아 내부의 분열도 더욱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11일(현지시간) 볼리비아 언론 등에 따르면 전날 모랄레스 대통령이 사퇴한 이후 볼리비아의 긴장이 한껏 고조됐다.

수도 라파스를 비롯한 볼리비아 곳곳에서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여러 학교와 상점이 문을 닫았고 도로 봉쇄 속에 대중교통 운행도 중단됐다.

전날 수도 라파스 등 볼리비아 곳곳에선 모랄레스의 퇴진에 환호하는 야권 지지자들의 자축 시위와 더불어 성난 모랄레스 지지자의 보복으로 보이는 방화 등도 이어졌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유명 야권인사 한 명은 모랄레스 지지자들이 자신의 집에 불을 붙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상점 약탈도 잇따랐지만 이러한 혼란 상황에서도 거리에 군인 등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현지 방송 토도노티시아스는 전했다.

라파스 시민 파트리시아 파레데스는 로이터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렵다. 모든 것이 엉망"이라며 "이웃들끼리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 처음 취임한 모랄레스 대통령은 자신의 승리를 선언한 지난달 대선 이후 부정 시비 속에 불복 시위와 퇴진 압박이 거세지자 전날 오후 사퇴 의사를 밝혔다.

선거 과정을 감사한 미주기구(OAS)가 부정이 있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군과 경찰 수장까지 나서 그의 사퇴를 종용한 데 따른 것이다.

줄곧 부정 선거 의혹을 부인해 왔던 모랄레스는 사퇴 순간에도 자신이 쿠데타의 희생양임을 시사했다.

대선 이후 볼리비아에선 친(親) 모랄레스 세력과 반(反) 모랄레스 세력의 충돌이 이어졌는데 모랄레스 사퇴 이후에도 이러한 분열과 갈등은 가라앉지 않고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모랄레스는 볼리비아 국민을 향해 "폭력을 끝내고 평화롭게 공존하자"고 당부했으나 스스로도 야권을 향한 적대적인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11일 오전 트위터에 "볼리비아와 전 세계가 쿠데타의 목격자"라며 야권 대선 후보였던 카를로스 메사 전 대통령과 시위 주도자 루이스 페르난도 카마초가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쿠데타 선동자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좌파 모랄레스 정권의 우방이던 쿠바와 베네수엘라에 이어 멕시코, 러시아 등 중남미 안팎의 정부도 쿠데타 주장에 동조하고 있어 볼리비아 바깥으로도 갈등이 확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볼리비아는 말 그대로 권력 공백 상태다.

유고시 대통령 권한을 승계하는 것은 부통령, 상원의장, 하원의장 순인데 이들은 모두 전날 모랄레스 대통령 사퇴 전후로 함께 물러났다.

일부 장관들도 줄줄이 사퇴해 정부 기능은 사실상 마비됐다.

선거관리당국인 최고선거재판소의 소장을 비롯한 주요 관계자들도 OAS의 감사 결과 발표 이후 무더기로 경찰에 체포됐다.

현지 일간 엘데베르는 야당 소속의 제닌 아녜스 상원 부의장이 다음 순위로 대통령 권한을 승계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아녜스 부의장도 대통령직을 맡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과거 중남미 국가들의 군사 쿠데타 사례처럼 권력 공백 속에 군사 정부가 들어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중남미 정치 전문가인 제니퍼 시어 미 애리조나대 교수는 로이터에 "앞으로 몇 시간 동안 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물러난 모랄레스의 현재 행방도 분명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우방국 망명설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그는 현지 ABI통신을 통해 "도망갈 이유가 없다"고 부인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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