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 몰린 볼리비아 모랄레스 "대선 다시 치르겠다"(종합)
미주기구 '선거 결과 무효화해야' 감사보고서 발표 직후 기자회견
재출마 요구엔 확답하지 않아…야권 "즉시 사퇴해야"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거센 대선 불복 시위 등으로 궁지에 몰린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결국 선거를 다시 치르겠다고 밝혔다.
앞선 대선 과정에서 여러 '부정'이 발견돼 결과를 무효화해야 한다는 미주기구(OAS)의 감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내린 결정이다.
볼리비아 대통령, 대선부정 논란 사퇴…모랄레스 14년 집권종식 / 연합뉴스 (Yonhapnews)
모랄레스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선거를 새로 치르겠다며 "이를 통해 볼리비아 국민이 민주적으로 새 정부를 뽑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현지 일간 엘데베르 등이 보도했다.
그는 OAS의 발표 결과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은 채 선거를 앞두고 의회가 선거관리당국을 개편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대선 시점 등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후 텔레수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볼리비아를 안정시켜야 한다. 그래서 내가 거둔 승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006년 볼리비아 첫 원주민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4선 연임에 도전한 모랄레스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대선에서 야권 후보인 카를로스 메사 전 대통령에 10%포인트 앞서며 결선 없이 승리를 확정지었다.
모랄레스 대통령의 19년 장기 집권 길이 열리나 했으나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미심쩍은 개표 정황 때문에 선거 직후부터 부정 선거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투표 당일 처음 나온 중간개표 결과엔 1, 2위 격차가 크지 않아 결선투표가 유력한 상황이었는데, 선거관리당국이 돌연 개표 결과 공개를 중단한 후 24시간 만에 다시 내놓은 결과에선 격차가 10%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지며 의혹을 낳았다.
야권은 곧바로 반발했고, 국제사회도 우려를 나타내며 대선 결과 무효화나 결선 실시를 촉구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부정 의혹을 일축하며 기꺼이 OAS의 감사를 받겠다고 했고, 감사에 들어간 OAS는 이날 모랄레스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전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달 선거 과정에서 투표 시스템에 여러 '부정'과 '정보 시스템 조작'이 발견됐다며, 선거 결과를 무효로 하고 새 선거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OAS는 또 모랄레스 대통령이 10%포인트 이상의 격차로 승리하는 것이 통계적으로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고도 덧붙였다.
OAS의 감사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모랄레스 대통령으로서는 더 버틸 명분이 부족해졌다.
아울러 격화하는 대선 불복 시위도 모랄레스 대통령을 압박했다.
지난달 대선 이후 3주째 이어진 시위로 볼리비아에서는 3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부상했다.
초기엔 모랄레스 대통령의 지지자들도 거리로 나와 양측 세 싸움 양상으로 진행됐으나 혼란이 오래 지속하는 과정에서 야권 세력은 점점 더 거세지고, 지지세는 약화했다.
친(親)모랄레스 단체인 볼리비아노동자센터의 후안 카를로스 우아라치마저 이날 "대통령의 사퇴로 볼리비아 국민에게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면 대통령이 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급기야 전날 볼리비아 3개 도시의 경찰이 야권 시위대에 가세하고, 군마저 시위 진압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자 모랄레스 대통령도 더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됐다.
'핑크 타이드'(온건한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물결) 퇴조에도 살아남았던 중남미 최장수 현역 지도자는 좁아진 입지에 결국 3주 만에 손을 들었다.
다만 그는 "헌법에 정해진 역할을 다해야 한다"며 당장 사퇴하라는 요구는 거부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의 임기는 내년 1월 22일까지다.
새로 치러지는 대선에 또다시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확답하지 않았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지금 상황에서 출마 여부는 2차적인 문제"라며 "볼리비아의 평화를 되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야권은 대선 재실시 결정에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모랄레스 대통령이 당장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날 모랄레스 대통령의 기자회견 이후 메사 전 대통령은 모랄레스 대통령이 선거 과정을 관장해서도, 대선 후보가 돼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랄레스 대통령을 향해 "일말의 애국심이 있다면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야권 반발 시위를 주도한 루이스 페르난도 카마초도 OAS 조사 결과로 명백한 선거 사기가 입증됐다며, 모랄레스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 우리는 싸움에서 승리했다"면서도 "민주주의가 견고하게 자리잡았다는 확신이 들 때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투쟁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편 이날 볼리비아 광업장관 등 각료들과 여당 소속 하원의장이 줄줄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볼리비아 법무부는 OAS의 감사 결과에 따라 선거관리당국에 대한 조사를 명령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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