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솔리니 고향' 伊도시, 아우슈비츠 수학여행 지원 거부 논란

입력 2019-11-09 21:24
'무솔리니 고향' 伊도시, 아우슈비츠 수학여행 지원 거부 논란

우파 성향 프레다피오 시장 "당파적 프로그램에 세금 지원안돼"

진보단체 등 중심으로 반발 확산…"시민에 수치스럽고 역겨운 일"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파시즘 창시자인 베니토 무솔리니가 출생한 곳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북부의 한 도시가 15년간 이어져 온 일선 고교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견학 지원을 돌연 중단해 논란이 일고 있다.

9일(현지시간) ANSA·dpa 통신 등에 따르면 에밀리아로마냐주(州) 프레다피오시(市)는 최근 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기억의 열차'(Treno della Meomoria) 프로그램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 프로그램은 기차를 이용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집단 학살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는 일종의 수학여행이다.

과거의 역사를 기억해 미래에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말자는 취지로 2004년 중앙정부 차원에서 도입한 것으로, 현재까지 총 3만7천여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프레다피오는 2011년부터 이 프로그램에 1인당 370유로(약 47만원)를 보조해왔다.

이번 결정은 로베르토 카날리 시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시장직에 오른 카날리는 '좌파의 텃밭'으로 불리던 프레다피오의 2차대전 이후 첫 우파 시장으로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프레다피오는 파시즘을 내세워 1920∼1940년대 이탈리아를 철권통치하고 2차대전의 참화 속으로 휘말려 들게 한 독재자 무솔리니가 태어나고 묻힌 곳으로 알려졌다.





카날리 시장은 이번 결정에 대해 ANSA 통신에 "우리는 기억의 열차 프로그램 자체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역사의 장소 일부만 찾아가고 나머지는 모두 잊는 식의 프로그램 운영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베를린 장벽 등 20세기에 저질러진 억압을 상징하는 다른 장소도 답사해야 한다면서 "당파·편향적 역사 지식을 습득하는 일에 공공 기금을 지원할 수는 없다"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진보 성향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비판론도 거세다.

2011년 기억의 열차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시작한 좌파 성향의 전 시장 조르조 프라시네티는 이번 결정을 "프레다피오의 모든 시민에게 수치스럽고 역겨운 일"이라고 맹비난했다.

프레다피오의 한 진보단체는 시가 폐기한 보조금을 대신 제공하겠다면서 더 많은 학생이 답사할 수 있도록 기금 모금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도 좌파 성향의 민주당과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이 손잡은 이탈리아 중앙정부도 프레다피오시의 움직임을 우려스러운 눈길로 주시하고 있다.

오성운동 소속 로렌초 피오라몬티 교육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년 1월 예정된 '기억의 열차'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과 유대인 사회 지도자, 역사학자 등이 함께 아우슈비츠를 답사한다고 소개하면서 "이는 증오와 차별, 폭력에 저항하는 하나의 수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여행에 카날리 시장도 동참하길 바란다. 당신이 거부한 학생들의 여행 경비는 물론 당신의 경비도 전액 교육부가 부담하겠다고 약속한다"고 비꼬았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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