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살해된 미국계 가족 눈물의 장례식

입력 2019-11-08 08:51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살해된 미국계 가족 눈물의 장례식

수백 명 모여 애도…유족 "여성·아이들인 것 알면서도 공격"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국경 지역에서 마약 카르텔의 총격에 무참히 살해된 미국계 가족들의 장례식이 많은 이들의 애도 속에 7일(현지시간) 열렸다.

AP·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멕시코 북부 소노라주 라모라에선 지난 4일 카르텔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여성 3명과 어린이 6명의 장례식이 열렸다.

주민들이 직접 나무를 깎아 만든 관에 여성과 아이들이 시신이 운구되는 동안 미국과 멕시코 곳곳에서 온 수백 명의 유족과 지인들이 눈물로 작별 인사를 했다.

이들은 4일 저녁 SUV 3대를 나눠 타고 치와와주와 소노라주 사이 도로를 지나던 중 매복해 있던 카르텔 조직원들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함께 있던 8명의 아이는 살아남아 달아났지만 이 중 6명은 다쳤다. 생존자 가운데 한 13살 소년은 동생을 숨게 한 후 혼자 22㎞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숨진 이들은 모두 미국과 멕시코 이중국적자로, 19세기 후반 미국 내에서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멕시코로 넘어와 정착한 모르몬교 커뮤니티의 일원들이다.



살해 동기는 아직 모호하다.

사건이 발생한 후 멕시코 수사당국은 카르텔이 이들이 탄 차량 행렬을 경쟁 조직의 것으로 오인해 공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메로 멘도사 멕시코 육군 참모총장은 "범인들이 어린이들은 놓아준 것을 보면 이들을 표적으로 한 공격은 아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과거에도 커뮤니티 일원에 대한 공격이 있었다며 멕시코 당국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이곳에서 범죄조직에 맞서기 위한 단체를 조직했던 벤저민 르배런이 마약 조직에 살해된 바 있다.

밴저민의 유족이기도 한 줄리언 르배런은 "총격범들은 대상이 여자와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생존자 아이의 증언에 따르면 여성 1명이 손을 든 채 차 밖으로 나왔지만 총에 맞았다고 전했다.

멕시코 카르텔은 외국인과 여성, 어린아이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으나, 대상이 여성과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고도 공격했다면 이 불문율도 옛말이 된 셈이다.

라모라를 비롯해 인근 마을엔 랭퍼드와 밀러, 르배런 등의 성을 공유하는 모르몬교 가족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는데 이번 사건으로 엑소더스가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족인 스티븐 랭퍼드는 "많은 이들이 이곳을 떠나려고 한다"며 "이제 이곳은 유령 마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딸과 손주들을 잃은 케네스 밀러는 로이터에 "멕시코엔 여전히 정의에 목마른 수천 명의 사람이 있다"며 이번 일이 범죄 희생자들을 위한 정의가 구현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기도 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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