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위기에 軍 불러내는 중남미 지도자들…군부 개입 초래 우려
전문가들 "정치불안이 군부에 역할 부여, 민주주의 허점 드러내…위험한 게임"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특파원 = 중남미 주요국에서 진행되는 정치적 위기가 군부의 정치 개입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현실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하면서 군부의 개입 여지가 넓어지는 중남미 민주주의의 허점이 드러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 수개월 동안 중남미 일부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군 장성들에 둘러싸인 채 대국민 연설을 하는 장면이 TV를 통해 소개됐다.
지난 10월 마르틴 비스카라 페루 대통령은 군 장성들과 함께 선 채 야당이 주도하는 의회의 사퇴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에콰도르에서는 군 장성들이 레닌 모레노 대통령을 앞에 둔 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시위가 격화하자 수도 산티아고에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군에 치안 책임을 부여했다.
대선 공정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는 볼리비아에서는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연설을 통해 군부에 국가 영토를 수호하고 정치적 단결을 유지할 것을 촉구했다.
이런 모습을 두고 브라질 일간 에스타두 지 상파울루는 정치적 위기에 빠진 대통령들이 군을 수시로 불러내고 있으며 정치적 불안정이 군부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고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과거 냉전 시대처럼 군부가 정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면서도, 현실에 대한 불만이 갈수록 가중하고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하면 중남미 민주주의의 허점이 드러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노트르담 대학의 아니발 페레스-리냔 교수(정치학)는 "중남미 대통령들이 매우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다"면서 "모든 대통령이 살아남기 위해 이렇게 해야 한다면 군부의 정치세력화는 피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중남미 정치 지도자들이 위기 때마다 군부의 힘을 빌리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남미의 민주주의는 1990년부터 2000년 사이에 비교적 견고해졌으나 정치적 위기가 발생하면 지도자들은 군부의 뒤에 숨으려 했다.
베네수엘라·볼리비아·니카라과의 좌파 대통령들은 군부를 혁명의 전위대로 활용했고, 콜롬비아·과테말라·브라질의 우파 대통령들은 군부를 지원해 범죄 대응에 나섰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끊임없는 '민주주의의 군사화'라고 미국 애머스트 대학의 하비에르 코랄레스 교수(정치학)는 말했다.
중남미에서 민주적 제도에 대한 믿음이 줄어들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정치체제가 불완전하다는 인식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칠레 시위 사태는 이런 현실에 대한 분노와 변화에 대한 희망이 집단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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