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총선 앞두고 여성의원 '엑소더스'…"모욕·협박 일상화"

입력 2019-11-01 14:50
英 총선 앞두고 여성의원 '엑소더스'…"모욕·협박 일상화"

니키 모건 문화부 장관 등 여성의원 6명 불출마 선언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도를 넘는 불결한 욕설과 일상이 돼 버린 협박.

영국 조기 총선을 6주 앞두고 하원 여성 의원들이 줄줄이 차기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면서 밝힌 이유다.

1일 미 CNN 방송 등에 따르면 조기 총선 윤곽이 잡히기 시작한 지난달 28일부터 불출마 선언을 한 여성 의원은 총 6명에 달한다.

이들이 선거판에 뛰어들지 않기로 한 데에는 각기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받아야 했던 모욕과 위협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가장 최근 불출마 의사를 밝힌 니키 모건 보수당 의원은 의원직을 수행하면서 겪어야 했던 모욕을 더는 감당하고 싶지 않다고 토로했다.

디지털·문화·스포츠부 장관을 겸하고 있는 모건 의원은 불출마 배경으로 "가족에게 가해지는 명백한 영향과 이에 수반되는 희생들"을 언급했다.





자유민주당 하이디 앨런 의원은 의회를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를 더 구체적이고, 더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어떤 직군에 있든 간에 협박, 공격적인 이메일, 길거리에서의 고함, SNS에서의 욕설을 참아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집에 긴급경보장치를 설치할 필요도요."

앨런 의원은 항공사진까지 동원해 자신을 협박하는 한 남성 때문에 집에 긴급경보장치뿐만 아니라 보안등, 산업용 잠금장치를 설치해야 했다.

해당 남성이 구속된 후에도 여전히 불안 속에 사는 앨런 의원은 "양극화된 정치환경 속에서 영국 정치인이 안전함을 느낄 수 있으려면 추가 보안 조치를 하는 게 평범한 일이 됐다"고 말했다.

앞서 불출마 의사를 밝힌 보수당의 캐롤라인 스펠맨 의원은 "SNS에 우리를 생식기로 칭하며, 강간하겠다는 위협이 만연한 세상에서 이렇게나 많은 훌륭한 여성 동료들이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놀랍지 않다"며 이러한 위협들로 인해 여성 후보들의 정치권 진입이 방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 의원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SNS에서 겪어야만 하는 고통은 수치로도 뒷받침된다.

2017년 총선을 앞두고 여성 하원 의원들이 5개월간 받은 모욕적인 트윗은 2만5천688건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161건의 여성 의원을 향한 욕설이 트위터에 올라온 것이다.

실제로 영국 하원 의원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2017년 151건에서 2018년 341건으로 늘어났다. 이들 범죄는 대부분 정치 성향과는 관계없이 여성이나 흑인, 아시아인, 소수인종을 겨냥한 것이었다.





노동당의 다이앤 애보트 의원이 가장 대표적인 피해자다. 국제앰네스티가 2017년 총선에 앞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모욕적인 트윗의 45%가 그의 앞으로 보내졌다.

애보트 의원은 당시 앰네스티에 온라인에서 겪는 많은 양의 인신공격으로 "심신이 미약해지고, 자신을 좀먹게 되고, 속상해진다"며 이런 것들이 젊은 유색인종 여성들의 정치참여를 꺼리게 만든다고 우려했다.

노동당 조 콕스 의원이 2016년 6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정하는 국민투표를 앞두고 극우 극단주의자에게 살해당한 사건은 여성 의원이 받는 위협이 얼마나 심각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콕스 의원은 당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반대 캠페인을 벌이던 중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극우 인사의 총격에 숨졌다. 영국에서 하원 의원이 피살당한 것은 1990년 이후 처음 벌어진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들 여성 의원이 의회에 입성한 2017년 총선은 여성의 약진이 눈에 띈 선거였다. 당시 여성 당선자는 208명으로 하원 전체 의석의 32%를 차지했으며, 이는 숫자 면에서나 비율 면에서나 영국 정치 역사상 처음 나온 기록이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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