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고 시위, 이라크 총리도 날리나…정치권, 총리사퇴 논의
레바논 이어 총리 연쇄 퇴진 관심…시위대, 개헌·거국내각 요구
바그다드 안전지대 '그린존'에도 로켓포 공격, 1명 사망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이라크에서 민생고와 부패에 반발한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면서 정치권에서 총리 사퇴 여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위 사태로 다른 중동국가인 레바논에서 총리가 사퇴한 것처럼 이라크도 총리가 결국 물러날지 관심이 쏠린다.
31일 AFP,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반정부 시위로 지난 1주일 동안만 100여명이 사망한 가운데 이라크 정계 지도자들은 전날 아델 압둘-마흐디 총리를 퇴진시킬지 여부를 긴장된 분위기 속에 논의했다.
이런 가운데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안전지대 '그린존'에도 로켓포 공격이 가해져 이라크 군인 한 명이 숨지는 일이 발생, 사태의 심각성을 더했다. 그린존에는 정부 청사와 외국 대사관들이 밀집해 있다.
정부 기구인 이라크 인권위원회는 지난 한 주간 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최소 100명이며 5천500여명이 부상했다고 집계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민간인으로 최루가스에 질식하거나 총에 맞아 숨졌다.
이달 1일부터 본격화된 시위로 인한 전체 사망자는 257명이고 부상자는 1만명을 넘는다.
이번 시위는 지난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축출된 이후 벌어진 시위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당초 열악한 공공 서비스와 실업, 부패로 촉발돼 압둘-마흐디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올해 77살인 압둘-마흐디 총리의 운명은 그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하던 양대 정파가 분열하는 가운데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신세가 됐다.
이라크 양대 정파 가운데 하나로 강경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이끄는 알사이룬 진영은 총리 사퇴와 조기 총선을 요구해, 총리는 최고위층의 지지를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고 AFP통신은 분석했다.
로이터 통신도 압둘-마흐디 총리의 운명이 불확실한 상태라고 전했다.
바르함 살레 이라크 대통령은 이미 지난 29일 밤늦게 총리 축출 여부를 무함마드 알할부시 의회 의장과 다른 주요 정파 지도자인 하디 알아메리와 논의했다고 이라크 정부 소식통이 AFP에 전했다.
의원 내각제인 이라크 의회에서 최대 의석을 갖고 있는 알사드르 진영은 불신임 투표를 우려해 의회 출석 요구를 거부해 온 압둘-마흐디 총리에게 31일(현지시간) 의회 출석을 재차 요구하기 위해 충분한 65표를 결집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위대를 지지하는 알사드르는 전날 트위터에서 압둘-마흐디 총리를 그대로 놔두면 "이라크가 시리아나 예멘처럼 될 수 있다"면서 내전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시위대는 공무원 연봉 삭감 등 정부의 장황한 개혁 방안을 무시한 채 새로운 헌법과 선거법 개정, '부패 내각' 총사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시위대 중 한 명인 알라 크데이르(63)는 "내각이 전원 사퇴하고 거국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AFP에 말했다.
처음에 시위대는 가난한 지역 출신으로 자칭 '혁명적'이라는 젊은이들이 주도했으나 시위가 4주간 이어지면서 어린 자녀를 둔 중산층, 젊은 여성과 노인들까지 가세했다.
이라크 군경은 시위 초기부터 실탄 조준 사격 등으로 강경대응에 나섰으나,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오히려 시위가 격화됐다.
이라크 군경은 30일에는 그린존으로 진입하려는 시위대 가운데 2명의 머리에 최루탄을 직격해 숨지게 했다고 보안 및 의료 소식통이 로이터에 밝혔다.
이날 바그다드 중심 타흐리르 광장에선 많은 이들이 시위대의 승리를 예감한 듯 노래하고 춤을 추기도 했으며, 밤샘 시위를 위해 여기 저기 임시 텐트를 설치하기도 했다.
현재 시위는 지방으로도 확산해 남부 시아파 무슬림 거주지를 중심으로 5개 지역에서도 산발적으로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앞서 레바논에선 이달 17일 시작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12일 만에 사드 하리리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히고, 이집트에서도 지난달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례적으로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2011년 중동에서 들불처럼 번진 '아랍의 봄'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도 나왔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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