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금단의 장소' 비밀문서고 명칭 변경…'사도문서고'로(종합)

입력 2019-10-29 18:58
바티칸 '금단의 장소' 비밀문서고 명칭 변경…'사도문서고'로(종합)

교황 '자의교서'…'비밀'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인식 때문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바티칸 교황청의 각종 귀중 문서를 보관한 '바티칸 비밀문서고'(Vatican Secret Archive)는 오랫 동안 금단의 영역으로 인식되며 가톨릭교인들과 사가들의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이는 일부분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명칭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문서고가 더는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생각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dpa·AP 통신 등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28일(현지시간) 교황청 부속기관인 비밀문서고 명칭을 사도문서고(Vatican Apostolic Archive)로 변경하는 내용의 교황 자의교서'(Motu Propio)를 발표했다.

교황은 '비밀'(Secret)이라는 용어가 주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피하려는 것이라고 명칭 변경 사유를 밝혔다.

비밀문서고라는 이름은 라틴어 '아르키붐 세크레툼'(Archivum Secretum)에서 유래됐다.

하지만 세크레툼이라는 단어는 '비밀스러운'이라는 뜻보다는 '사적인', '분리된'이라는 의미가 더 강했다고 한다.

게다가 레오 13세 교황 시절인 1881년부터 이미 학자·연구자들에게 문서고를 개방해온터라 비밀문서고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판단했다.

바오로 5세 재위 때인 17세기 초 설립된 바티칸 비밀문서고에는 교황의 각종 외교문서와 서신, 교황의 회계 장부 등 희귀 자료들이 보관돼 있다.



비밀문서고에 있는 선반을 다 이으면 길이가 84㎞에 달할 정도로 보관된 문서의 양도 방대하다. 가장 오래된 문서는 8세기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때문에 기독교 영역을 넘어 세계사의 보고로 꼽힌다.

주요 문서 중에는 지동설을 주장해 가톨릭 교단의 미움을 산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1633년 종교재판 기록과 1534년 영국 성공회가 로마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간 배경이 된 헨리 8세의 이혼 요청 서신 등도 있다.

교황청은 학자·연구자들에게 문서고 접근을 제한적으로 허락하고 있긴 하지만, 문서를 한꺼번에 모두 공개하는 것은 아니다. 통상적으로 각 교황의 재위 기간이 끝나고서 70년 뒤 차례로 공개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에 따라 현재는 비오 11세가 교황으로 재위한 1939년까지 문서들만 열람이 가능하다.

다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과 겹치는 비오 12세(1939∼1958) 재위 기간 문서의 경우 이례적으로 내년 2월에 공개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그동안 유지된 원칙대로라면 공개 시점이 2028년인데 이를 8년이나 앞당긴 것이다.

이는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전쟁 피해자 일부가 생존해있을 때 2차대전 당시 교황청의 역할 등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학계 등의 압력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비오 12세는 전쟁 당시 독일 나치의 홀로코스트 만행에 침묵했다는 등의 논란이 제기된 교황이다.

이에 대해 교황청은 당시 교황이 공개적으로 개입할 경우 사태가 더 악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막후에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활동을 했다고 반박해왔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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