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前 빈라덴 잡은 오바마처럼?…트럼프 'IS수괴 제거' 띄우기(종합)

입력 2019-10-28 05:11
수정 2019-10-28 14:38
8년前 빈라덴 잡은 오바마처럼?…트럼프 'IS수괴 제거' 띄우기(종합)

휴일 기자회견서 "알바그다디, 빈라덴보다 거물"…국정난맥 돌파카드 분석도

트럼프 과도한 기밀노출 '뒷말'…민주당엔 안 알리고 러시아와 정보공유?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지난 2011년 5월 1일 밤 11시35분.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알카에다 수괴,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2001년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빈라덴의 사망 소식을 미국의 주요 방송사들은 생중계했고, 자정이 가까워진 일요일 심야 시간대임에도 무려 5천650만명(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이 시청했다.

그로부터 약 8년 반이 흐른 27일(현지시간). 이번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닮은꼴 회견'을 연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휴일인 이날 오전 9시20분 백악관 회견을 통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수괴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각종 외교 난맥상에 휩싸인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오바마 전 대통령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외교안보 성과를 모처럼 내놓은 셈이다. 특히 시리아 주둔 미군 철군에 따른 'IS 재건' 우려에 직면한 상황에서 '비장의 카드'를 꺼내든 모양새다.



◇오바마 의식한 트럼프 "알바그다디, 빈라덴보다 거물"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빈라덴 사살 작전'을 시종 의식했다.

'9·11 테러'의 악몽이 생생한 미국인들에게 실제로는 빈라덴보다 더 대단한 거물을 제거했다고 거듭 강조한 것이다.

알바그다디와 빈라덴 모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로, 미국은 동일한 액수의 현상금(2천500만달러·약 294억원)을 내걸고 추적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밤 자신의 트위터에 "아주 큰 일이 방금 일어났다!"고 적었고, 백악관도 27일 오전 9시 트럼프 대통령의 중대 성명이 발표된다고 공지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트럼프 상황실 오바마와 '달랐다'…"두 대통령 차이는" / 연합뉴스 (Yonhapnews)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미군 특수부대의 활약을 치켜세우면서 "알바그다디가 개처럼, 겁쟁이처럼 숨졌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알바그다디를 가리켜 "가장 거물이자 가장 사악한 인물"이라며 "오사마 빈라덴은 (9·11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로 거물이 됐지만, 이 사람은 '국가'로 지칭하려고 했던 전체를 건설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잡았던 최대 거물"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핵심 참모들과 직접 특수부대 작전을 지켜봤다면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크 에스퍼 국방부 장관,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이름을 열거한 것도 8년여 년 전 '빈라덴 사살 작전'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앞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상황실에서 '빈라덴 사살 작전'을 지켜봤고, 관련 사진이 공개돼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백악관 전속 사진사가 촬영해 언론에 배포한 사진으로, 오바마 전 대통령은 물론 조 바이든·힐러리 클린턴 등 당시 외교안보팀 주요 인사들의 긴장되고 긴박한 순간을 포착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트럼프 대통령 측도 이번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을 지켜보는 트럼프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의 모습을 담은 상황실 사진을 곧바로 공개했다.





◇트럼프의 정국 돌파 노림수?…벌써 뒷말 무성

이번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은 트럼프 대통령이 각종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빈라덴 사살 작전'을 전격 공개하면서 '반짝' 지지율 상승효과를 누린 바 있다.

우선 대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시리아 주둔 미군의 철수를 결정하면서 국제적 비판론에 직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철군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미군 철수로 이 지역의 IS가 다시 활개를 칠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IS 수괴'를 제거함으로써 '시리아 미군 철군'에서 비롯된 'IS 재건론' 우려를 일축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대내적으로도 이른바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민주당의 전방위적인 탄핵 조사에 직면한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노림수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과도하게 자화자찬한 탓에 벌써 뒷말을 낳는 분위기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통상적으로 이런 회견에서 공개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정보들이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WP는 "대통령으로서 언제부터 이번 작전을 알고 있었는지, 언제 상황실로 나왔는지, 작전이 어떻게 실행됐는지, 알바그다디의 아내와 아이들이 어떻게 사망했는지, 심지어 최후 상황에 대한 일부 묘사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상황실에 5시에 모였고, 그 후 공격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또한 알바그다디가 군견에 쫓겨 도망가던 중 막다른 터널에 이르자 폭탄조끼를 터뜨려 자폭했고 그가 마지막 순간을 "울고 훌쩍이고 절규하며 보냈다"라고도 했다.

주변국의 역할을 거론한 것도 통상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변국들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가장 먼저 러시아를 언급했고, 이어 시리아·터키·이라크를 거론했다. 그러면서 쿠르드족에 대해 "미국을 일정 부분 지원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을 '정보유출 기계'(leaking machine)로 규정하면서 민주당 지도부에는 미리 알리지 않았지만, 러시아에는 사전에 정보를 공유했다고 밝혔다.

다만 상원 정보위원장인 리처드 버, 법사위원장인 린지 그레이엄 등 공화당 상원의원 2명에는 미리 알려줬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설명했다.

WP는 "통상 현직 대통령은 군사적으로 민감한 작전을 의회 지도부에 통보해왔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보다 러시아를 더욱 신뢰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성명에서 "의회 지도부가 아닌 러시아가 먼저 보고받은, 이번 (알바그다디) 습격에 대해 하원에 보고해달라"고 백악관에 브리핑을 요구했다.

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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