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 유해 스페인 국립묘역서 이장…총리 "민주주의의 승리"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 유해 '전몰자의 계곡'에서 이장 개시
사회당 내각 '과거사 청산' 드라이브의 주요 성과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쿠데타로 집권해 스페인을 30년 넘게 철권통치했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의 묘 이장이 24일(현지시간) 시작됐다.
국립묘역에 있는 프랑코의 유해를 파내 다른 곳으로 이장하는 것은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집권 후 과거사 청산 드라이브로 추진해온 역점 과제였다.
엘파이스, EFE통신 등 스페인 언론에 따르면 수도 마드리드 외곽의 국립묘역인 '전몰자의 계곡'에 있던 프랑코의 유해 이장 작업이 이날 오전 후손 20여명이 참관한 가운데 시작됐다.
프랑코의 유해는 헬리콥터를 이용해 마드리드 북쪽 엘파르도의 민고루비오 묘지로 옮겨져 부인 카르멘 폴로 옆에 묻힐 예정이다.
프랑코의 유해 이전은 산체스 정부의 과거사 청산 드라이브의 핵심 과제였다.
독재자 프랑코 유해 스페인 국립묘역서 이장…"민주주의의 승리" / 연합뉴스 (Yonhapnews)
산체스가 이끄는 사회노동당(중도좌파) 내각은 작년 6월 집권하자마자 프랑코의 후손들과 프랑코에 향수를 느끼는 우파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력한 과거사 청산작업을 추진해왔다.
스페인 정부는 당초 지난 6월 프랑코의 유해를 전몰자의 계곡에서 파내어 이장하려 했지만, 유해 이장을 시작하기 며칠 전에 대법원이 프랑코의 후손들이 낸 집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계획이 중단됐다.
한동안 표류하던 프랑코 묘 이장은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고 나서야 다시 추진될 수 있었다. 대법원 전원재판부가 지난달 24일 프랑코의 후손들이 정부의 프랑코 유해 이전 추진이 부당하다면서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기 때문이다.
군인이었던 프랑코는 1936년 총선으로 인민전선 정부가 들어서자 쿠데타와 내전을 일으킨 인물이다.
1939년까지 3년간 이어진 내전에서 공화파를 제압하고 독재국가를 수립해 30년 넘게 스페인을 철권통치했다.
1975년 사망한 프랑코는 수도 마드리드 인근 '전몰자의 계곡'의 거대한 바실리카 양식의 화강암 구조물로 된 특별묘역에 묻혔다.
전몰자의 계곡은 프랑코가 투옥한 정치범들이 강제노역에 동원돼 지어진 국가묘역으로, 1936~1939년 내전 당시 서로 반대편에 섰다가 사망한 병사와 시민 3만 명 이상이 함께 잠들어 있다.
쿠데타로 내전을 일으키고 독재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인물의 유해를 국가묘역에 계속 두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놓고 스페인 민주화 이후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우파와 가톨릭 보수진영에서는 사회당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과거의 상처를 헤집으려고 한다는 비판과 함께 프랑코가 스페인을 혼란에서 구해 안정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라는 주장도 계속했다.
이날 묘지 이장 작업이 시작되자 프랑코 지지자들이 '프랑코여 영원하라' 등의 문구가 쓰인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페인 전체적으로는 프랑코의 묘지 이장을 두고 찬성 여론이 더 높은 편이다.
일간 엘문도가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3%가 이장에 찬성했고, 32.5%는 반대했다.
산체스 총리는 프랑코의 묘지 이전에 대해 "존엄, 기억, 정의, 속죄의 위대한 승리"라면서 "이는 스페인 민주주의의 승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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