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개도국 지위 간담회 농민 반발로 파행…정부 "곧 결론낼 것"(종합2보)

입력 2019-10-22 19:26
WTO 개도국 지위 간담회 농민 반발로 파행…정부 "곧 결론낼 것"(종합2보)

기재차관 "농민단체 6개 요구항목 정부차원 검토"

이르면 25일 회의서 확정 관측

(세종·서울=연합뉴스) 김연정 이지헌 이태수 기자 = 정부가 22일 세계무역기구(WTO) 농업분야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여부 결정을 앞두고 농민단체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간담회를 열었으나 회의 공개와 농민단체의 6대 요구사항에 대한 정부의 입장 공개 표명 문제를 놓고 정부와 농민단체가 설전을 벌이다가 간담회가 결국 파행됐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등 '가장 부유한 나라'들이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며 90일 시한 내 조처가 없다면 해당 국가를 개도국으로 대우하지 않겠다고 밝힌 가운데 정부가 이르면 25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여부를 확정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이날 서울 대한상의에서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민관합동 농업계 간담회를 열고 "미래에 전개될 WTO 협상에서도 개도국 특혜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며 의견 수렴에 나섰다.

간담회에는 정부 측에서 기재부·산업통상자원부·농림수산식품부의 담당 국·과장들이, 농업인단체에서 한국농축산협회·한국농업인단체연합·축산관련단체협의회·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한국낙농육우협회·한국토종닭협회 회장·대표 등이 참석했다.

간담회는 당초 정부 당국자와 농업인단체 대표 간 비공개로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농업인단체 측이 공개 진행을 요구하면서 간담회가 차질을 빚었고 이 과정에서 고성과 실랑이가 오갔다.

정부 측 요구대로 간담회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듯했으나 일부 농민단체 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중단된 뒤 재개되지 못했다.

농업인단체는 간담회에 앞서 'WTO 개도국 포기 방침 철회'라고 적힌 머리띠를 두르고 종이 피켓을 든 채 항의 시위를 했다.



김 차관은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계기로 농업 분야에서만 예외적으로 개도국 특혜를 인정받아왔으나, 지금은 1996년 당시에 비해 우리 경제 위상이 크게 높아졌고 WTO 내에서도 이 이슈가 본격 논의됨에 따라 미래에 전개될 WTO 협상에서도 개도국 특혜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개도국 특혜는 향후 국내 농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으로, 정부는 (농민단체) 의견을 충분히 듣고 최대한 고려해 신중하게 정부 입장을 마련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며 "정부가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우리 농업의 현실이 어떤지, 향후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 어떠한 정부의 정책과 지원이 필요한지 등에 대해 고견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농민단체들은 "그동안 산업부가 농민단체를 데리고 너무 장난을 치고 거짓말만 했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도 농업에 아무런 피해가 없다'는 말만 했다", "정부와 농민단체 간 신뢰가 이미 깨졌다"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김 차관이 "정부 회의가 공개로 진행되면 자유롭게 토론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설득했음에도 일부가 비공개 진행에 반발하며 회의장을 나섰고 결국 3명을 제외한 농민단체 대표들이 간담회장에 돌아오지 않아 회의는 종료됐다.

김 차관은 기자들과 만나 "오늘 6개 항으로 (농업인단체 측이) 요구사업을 정리해왔고 그에 대해 정부 입장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밝혀달라고 했는데, 단기간에 확정적으로 정부 입장을 바로 말하기엔 내부적으로 부처 간 의견조율과 논의가 필요한 사항들"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논의해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WTO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 시점에 대해서는 "오늘 부총리 간부 회의 메시지를 보면 '논의를 마무리할 시점'이라는 표현이 있다. 빨리 결론을 내야죠"라고 말해 결정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이날 농민단체 측은 정부를 상대로 ▲ 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특별위원회 설치 ▲ 농업 예산을 전체 국가 예산의 4~5%로 증액 ▲ 취약 계층 농수산물 쿠폰 지급으로 수요 확대 ▲ 공익형 직불제 도입 ▲ 1조원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부족분 정부 출연 ▲ 한국농수산대 정원 확대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전까지 농민단체 간에 입장 조율이 안 됐었지만 이번에 6개 요구항목을 정리해온 점이 달라진 점"이라며 "농업인단체에 다시 간담회를 하자고 제안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간담회가 성사되지 않으면 이달 안에 정부 입장을 발표한다고 했으니 그때 농민단체 측 요구사항 중에서 답할 수 있는 부분들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yjkim8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