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남은 휴전…다시 갈림길에 선 쿠르드의 운명은

입력 2019-10-22 02:50
하루 남은 휴전…다시 갈림길에 선 쿠르드의 운명은

22일 오후 10시 휴전 종료…군사작전 재개 여부 주목

터키 444㎞ vs 쿠르드 120㎞…안전지대 규모 놓고 이견

시리아 정부군 국경에 배치…푸틴 의견이 결정적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승욱 특파원 = 미국이 중재한 터키와 쿠르드족의 휴전이 불과 하루 뒤면 종료된다.

'세계 최대의 나라 없는 민족' 쿠르드족이 또 한 번 운명의 갈림길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터키와 쿠르드족은 지난 17일 120시간 동안 휴전에 합의했다. 휴전이 종료하는 시간은 정확히 22일(현지시간) 오후 10시(한국시간 23일 오전 4시)다.

터키는 쿠르드족이 휴전 조건을 지키지 않을 경우 120시간이 지나자마자 공격을 재개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휴전에 합의한 직후 "휴전 조건이 완전히 이행되지 않으면 120시간이 끝나는 순간부터 작전은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매일 군사작전 재개를 거론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테러리스트들의 머리를 짓뭉개버리겠다"는 거친 발언까지 쏟아내며 쿠르드족을 압박했다.

터키가 제시한 휴전 조건은 120시간 안에 터키가 설정한 안전지대 밖으로 쿠르드 민병대(YPG)가 철수하는 것이다.

터키는 유프라테스강 동쪽의 시리아 국경을 따라 폭 32㎞에 이르는 안전지대를 설치하고 자국 내 시리아 난민 100만명 이상을 이주시킬 계획이다.

쿠르드 민병대는 휴전 조건을 받아들이는 의미로 20일 시리아 북동부의 국경도시 라스 알-아인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라스 알-아인은 터키군과 YPG가 주축을 이룬 '시리아민주군'(SDF)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그러나 터키가 SDF의 라스 알-아인 철수 정도로 휴전 합의가 지켜졌다고 여길지는 미지수다.

터키는 유프라테스강 동안에 접한 코바니부터 이라크 국경에 이르는 444㎞ 구간을 안전지대로 설정했지만, SDF는 탈 아브야드와 라스 알-아인 사이의 120㎞ 구간만 안전지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마즐룸 아브디 SDF 사령관은 "휴전을 준수할 준비가 됐다"면서도 "탈 아브야드와 라스 알-아인 사이 국경지대에만 한정된 조처"라고 밝혔다.

휴전 조건을 놓고 양측이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면 휴전 종료가 전투 재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쿠르드족은 또 한 번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볼 전망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9일 개전 이후 8일간 756명의 YPG 대원을 무력화했다고 밝혔다. 터키 당국은 적을 사살·생포했거나 적이 항복했음을 나타내기 위해 주로 '무력화'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민간인 피해도 속출했다. SDF는 휴전 합의 전날까지 시리아 북동부에서 민간인 218명이 사망하고 65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했다. 전쟁의 참화를 피해 피란길에 오른 민간인은 3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터키가 공격을 재개할 경우 전투 요원은 물론 수십만에 달하는 민간인까지 전쟁의 고통 속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다만, 개전 초기와 달리 몇 가지 변수가 터키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터키군의 공격으로 궁지에 몰린 쿠르드족은 지난 13일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시리아 정부군과 손을 잡았다.

알아사드 정권은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반군의 공격에서 수도 다마스쿠스를 방어하기 위해 북동부 지역에서 철수했다.

그 틈을 타 쿠르드족은 북동부를 장악하고 사실상 자치를 누릴 수 있었다.

세계를 테러의 공포로 몰아넣은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쿠르드족은 시리아 북동부를 발판으로 독립국 건설의 꿈을 이루는 듯했으나, 터키의 공격에 눈물을 머금고 알아사드 정권에 도움을 요청했다.

쿠르드족의 지원 요청에 알아사드 정권은 즉각 반응했다. 터키 국경에서 불과 30㎞ 떨어진 만비즈에 병력을 배치한 데 이어 터키 국경과 맞붙은 코바니에도 정부군이 진입했다.

유프라테스강 동안의 코바니는 터키가 설정한 안전지대 내부에 있다.

터키가 군사작전을 재개해 시리아 정부군과 충돌할 경우 전쟁의 흐름은 터키 대 쿠르드족이 아닌 터키 대 시리아 간 국가 규모의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사실 8년간의 내전으로 병력의 양과 질이 크게 저하한 시리아 정부군은 터키군에 큰 위협이 될 수 없지만 문제는 배후의 러시아다.

러시아는 2015년부터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반군의 공격으로 한때 실각 위기에 놓였으나 러시아의 도움으로 전세를 뒤집고 내전에서 승기를 굳혔다.

터키군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정부군을 공격하면 러시아와 무력충돌이 빚어지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러시아제 S-400 방공 미사일을 구매하는 등 친러 행보를 보이는 터키로서는 생각하기 싫은 '경우의 수'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휴전 마지막 날인 22일 러시아로 날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날 계획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9일 집권당(정의개발당) 행사에서 "러시아의 보호를 받는 시리아 정부군이 우리 작전 구역 중 일부에 주둔 중"이라며 "푸틴 대통령과 이 문제를 논의해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푸틴 대통령의 결정이 군사작전 재개의 결정적 요인이 될 전망이다. 쿠르드족의 운명이 푸틴의 손에 달린 셈이다.

kind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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