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우렁이 '생태계교란 생물' 추진에…"친환경 쌀농업 어쩌나"

입력 2019-10-20 05:55
왕우렁이 '생태계교란 생물' 추진에…"친환경 쌀농업 어쩌나"

'AI 우려' 오리 대신 왕우렁이 사용…김현권 "농촌 현실과 동떨어진 행정"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정부가 친환경 쌀 재배에 널리 쓰이는 왕우렁이를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하려 하자 농업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20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과 농업계 등에 따르면 환경부는 왕우렁이를 포함한 생물 6종을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하는 내용의 고시를 이달 1일부터 입법예고 중이다.

환경부는 왕우렁이 지정 이유로 "왕성한 번식력을 지니고 토착종과 경쟁을 벌인다"며 "하천변 등의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이유를 댔다.

문제는 국내 친환경 쌀 재배 농가 대부분이 농약을 대신할 제초 수단으로 왕우렁이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한때 오리를 이용한 농법도 주목받던 때가 있었지만 조류인플루엔자(AI) 등에 대한 우려로 현재는 잘 쓰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는 "우렁이 농법은 제초제 사용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를 방지하기 위해 대체 농법으로 쓰이는 벼 재배 농법"이라며 "제초 효과는 탁월하면서 농작물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연합회는 "남부지방에서 왕우렁이가 소량 월동하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우렁이를 논에 투입해 활동이 왕성한 기간에도 지금까지는 주변 밭이나 들에 특별한 영향을 미쳤다고는 조사된 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황소개구리나 배스 같은 외래종은 천적이 없어 생태계에 피해가 발생했지만, 왕우렁이는 조류나 야생동물 같은 육식성 포유동물이 모두 천적이라 이 같은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회는 "왕우렁이가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돼 우렁이 농법이 중지되면 친환경 농법 전반에 대해 농가 불안이 가중될 수 있다"며 "농가들이 제초제를 쓰던 시절로 돌아가 오히려 생태계 피해를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환경부는 왕우렁이를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하려 하는 것은 국립생태원 위해성평가결과에 따른 것으로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본 뒤 최종 결정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관련 이슈를 최근에 접하고 농민단체와 긴밀히 협의해 대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민단체들은 입법예고 기한 내에 입장을 정리해 환경부에 전달할 방침이다.

농민단체 관계자는 "우렁이 농법이 금지되면 지금으로서는 마땅한 제초 방법이 없다"며 "쌀겨 농법이나 침수 농법 등이 있기는 하지만 우렁이 농법이 가장 일반적이고 지난 수십 년 간 제초 능력이 검증된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현권 의원은 "정부는 공익형 직불제를 도입해 생태 친화적인 농사를 짓는 농민을 지원하려 하는데 친환경 농사를 짓는 이들이 제초제를 대신해 쓰는 우렁이를 금지한다면 공익형 친환경 농업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왕우렁이가 월동해 개체 수를 불린다고 하지만 정작 농민들은 매년 우렁이를 사 논에 집어넣고 있어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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