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백색테러' 석달 새 9건…지방선거 후보자 겨냥 잇따라

입력 2019-10-17 20:44
홍콩 '백색테러' 석달 새 9건…지방선거 후보자 겨냥 잇따라

야당 "혼란 불러일으켜 친중파 불리한 선거 연기하려는 의도"

피습 민간인권전선 지미 샴 대표, 치료 후 안정 되찾아

캐리 람 입법회 일정, 야당 의원 반발로 이틀째 '파행'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홍콩 시위를 주도해온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의 지미 샴(岑子杰) 대표가 '백색테러'를 당한 가운데 다음달 구의원 선거 후보자들에 대한 공격이 잇따라 홍콩 사회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1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홍콩프리프레스 등에 따르면 야당인 민주당 로이 퀑 의원이 공격받은 것을 비롯해 지난 8월 이후 범민주 진영 인사들을 겨냥한 백색테러는 벌써 9건에 달한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11월 24일 치러지는 구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에 대한 공격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야당인 노동당 소속 스탠리 호 후보가 사이쿵 지역에서 괴한 4명에게 쇠막대기와 각목 등으로 구타를 당해 머리와 손 등에 골절상을 입었다.

이달 12일 저녁에는 조슬린 차우(23) 후보가 노스포인트 지역에서 선거 유세를 벌이던 중 중년 남성한테 두차례 얼굴을 얻어맞았다.

이어 지난 10일에는 퀀퉁 지역에서 출마하는 자넬러 렁(25) 후보가 길거리에서 괴한에게 흉기로 머리를 가격당했다. 그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페이스북 등으로 협박을 받기도 했다.

전날 4명의 괴한에게 폭행을 당한 지미 샴 대표도 샤틴 지역에서 친중파 현역 의원에 맞서 구의원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다음 달 구의원 선거는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 영향 등으로 범민주 진영이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친중파 진영에서는 시위가 이어질 경우 선거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제기됐다.

야당인 공민당 탄야 찬 의원은 "최근 백색테러는 특정 세력이 혼란을 부추겨 홍콩 정부가 구의원 선거를 연기하도록 하는 구실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전날 피습 후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은 지미 샴 대표는 다행히 안정을 되찾았다. 그는 피습으로 인해 이마에 3㎝ 상처를 입었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나는 곧 회복될 것이며, 우리의 5대 요구를 평화롭고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계속 주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은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민간인권전선 에릭 라이 부대표는 "샴 대표는 얼굴과 관절 등을 다쳤지만, 골절상은 없었다"며 "그는 20일 집회에서 홍콩 시민들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행진하기를 바라며, 경찰도 이를 허가하기를 희망했다"고 전했다.

민간인권전선은 오는 20일 침사추이에서 웨스트카오룽 고속철 역까지 행진하며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할 예정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백색테러가 민간인권전선이 20일 집회를 예고한 직후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 집회 저지를 목적으로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백색테러의 가해자가 남아시아인들이라는 증언이 나왔지만, 샴 대표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인종 간 갈등 등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에서는 친중파 진영이 동남아인 등을 고용해 백색테러를 가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이날 홍콩 의회인 입법회에서 전날 시정연설 설명회를 개최하려고 했지만, 야당 의원들의 강력한 반발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야당 의원들은 팻말 등을 든 채 캐리 람 행정장관에게 야유를 퍼붓고 구호를 외치며 그의 설명회를 방해했다.

레이먼드 찬 의원은 람 장관을 향해 "당신은 홍콩의 히틀러이며, 당신 손에는 온통 피가 묻어 있다"고 외쳤으며, 클라우디아 모 의원은 "당신은 습관적인 거짓말쟁이다"고 고함을 질렀다.

야당 의원 14명은 하얀 조화를 들고서 송환법 반대 시위 등에 활발하게 참여했다가 지난달 22일 익사체로 발견된 15세 여학생 천옌린(陳彦霖)을 추모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최소 10명의 야당 의원이 강제 퇴장을 당했으며, 결국 설명회는 고작 3명 의원의 질의만을 받은 채 끝나고 말았다.

전날 캐리 람 행정장관은 입법회에서 시정연설을 하려고 했으나, 그가 시정연설을 시작하자마자 야당 의원들은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그의 시정연설을 방해했다.

결국 그의 입법회 시정연설은 무산됐고, 홍콩 정부는 미리 녹화해둔 시정연설을 전날 오후 TV를 통해 내보내야만 했다.

홍콩 행정장관이 녹화 영상을 통해 시정연설을 한 것은 홍콩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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