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시리아 만비즈 병력집결에 긴장고조…러, 충돌방지 안간힘(종합2보)

입력 2019-10-16 10:42
수정 2019-10-16 14:59
터키-시리아 만비즈 병력집결에 긴장고조…러, 충돌방지 안간힘(종합2보)

푸틴, 에르도안에 강력 항의…"터키-시리아 정부군 충돌 막아야"

시리아 정부 손 잡은 쿠르드족 반격 나서…라스 알-아인 탈환

현재까지 민간인 수십명 사망…유엔 "피란민 16만명에 달해"



(이스탄불·서울=연합뉴스) 김승욱 특파원 현윤경 기자 = 유프라테스강을 넘어 시리아로 진격한 터키군과 쿠르드·시리아 정부군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양측은 유프라테스강 서쪽의 요충지 만비즈에 병력을 속속 집결시키며 양측의 확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만비즈에 주둔하던 미군은 휘말리지 않겠다며 도시를 떠났지만, 러시아군은 양측의 경계선에서 충돌을 방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미군이 떠난 자리를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개전 7일째인 15일(현지시간) 터키 국방부는 "유프라테스강 동쪽에서 진행 중인 '평화의 샘' 작전으로 테러리스트 611명을 무력화했다"고 밝혔다.

'평화의 샘'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난 9일 시리아 북동부 군사작전 개시를 선언하면서 붙인 작전명이다.

개전과 함께 제공권과 중화기를 앞세워 쿠르드 민병대(YPG)가 주축을 이룬 시리아민주군(SDF)을 몰아붙인 터키군은 주요 요충지인 탈 아브야드와 라스 알-아인을 함락하고 유프라테스강 서쪽의 쿠르드족 도시 만비즈에 병력을 집중하고 있다.

터키의 만비즈 공격 의도를 파악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는 미군이 철수한 이곳에 정부군을 배치했다.

쿠르드족이 터키의 대규모 공세를 막기 위해 '앙숙' 시리아 정부와 손을 잡기로 지난 13일 전격 합의함에 따라, 어제의 적이던 쿠르드족과 시리아 정부는 터키에 함께 맞서고 있다.

이와 관련, 러시아의 시리아 특별대사인 알렉산더 라브렌티예프는 양측의 합의를 러시아가 중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그는 쿠르드족과 시리아 정부군의 협상이 시리아 북서부 흐메이밈에 있는 러시아 공군기지 등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한 대(對)테러전을 명분으로 내걸고 지난 2015년 9월부터 현지에 자국 공군을 파견해 내전에 개입,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 왔다.

터키군이 만비즈를 공격할 경우 터키군과 시리아 정부군의 충돌이 불가피해진다.

임박한 터키 공격에 불안감을 느낀 만비즈 주민들은 시리아군의 입성에 안도감을 드러냈다.

일부 주민은 시리아 국기와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초상화를 흔들면서 시리아 병력을 환영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시리아 정부군이 만비즈를 포함한 시리아 북동부에 다시 들어온 것은 2012년 이후 처음이다. 알아사드 정부는 시리아 내전이 격화되자 수도 다마스쿠스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반군과 싸움에 집중하기 위해 이 지역을 비웠다.

시리아 쿠르드족은 이 틈을 타 민병대를 조직해 이 지역을 장악한 뒤 사실상 자치를 누려왔다.



양측의 충돌이 임박한 가운데 만비즈에 주둔 중이던 미군은 도시를 떠났다.

시리아 주둔 미군 대변인은 이날 "만비즈에서 철수를 완료했으며, 수백 명에 달하는 병력이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도록 터키·러시아와 접촉했다"고 밝혔다.

미군은 2017년부터 만비즈에 주둔하며 터키와 쿠르드족 간 충돌을 방지해왔다.

다만 미군은 시리아 북부 도시 아인 이사 인근에 주둔한 미국 지상군에 터키의 지원을 받는 병력이 접근하자 F-15 전투기와 아파치 헬기 등을 동원해 무력시위를 했다고 미 국방부가 밝혔다.

시리아와 터키 사이의 정면충돌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비즈에서 미국이 떠나자 러시아가 즉각 미군의 역할을 대신하는 모습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시리아 정부군이 만비즈와 그 주변을 완전히 장악했다"며 "러시아군은 시리아군과 터키군의 경계선을 따라 순찰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의 최대 지원 세력이다. 러시아의 지원이 없었다면 알아사드 대통령은 반군의 공격에서 정권을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근 미국과 갈등을 겪은 터키도 러시아산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하는 등 친러 행보를 보여왔다.

터키와 알아사드 정권 모두에 러시아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존재인 셈이다.

러시아는 이날 터키가 시리아 쿠르드를 상대로 군사 행동에 나선 이래 가장 강한 강도의 비판을 쏟아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터키와 시리아 접경에서 벌어지는 상황 우려를 표명하고, 터키군과 시리아 정부군 사이의 충돌을 막아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푸틴 대통령은 특히 에르도안측 요청으로 이뤄진 이 날 통화에서 시리아 쿠르드족의 감시 아래 억류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조직원들이 혼란을 틈타 탈출을 노리는 상황을 용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크렘린궁은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긴급 회담을 위해 조만간 러시아에 올 것을 제의했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를 수락했다고 크렘린궁은 덧붙였다.

이에 따라,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 공격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양측의 회동이 곧 이뤄질지에 관심이 쏠린다.

라브렌티예프 시리아 특별대사도 이날 "터키의 시리아 급습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으며, "터키의 군사 작전은 시간과 규모에 있어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터키는 시리아에 영원히 주둔할 권리가 없다"며 "1998년 체결된 '아다나 협정'에 따라 터키군은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시리아 쪽으로 최대 10㎞만 한시적으로 진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터키는 만비즈를 비롯한 유프라테스강 동쪽 시리아 국경을 따라 길이 480㎞, 폭 30㎞에 이르는 안전지대를 설치하고 자국 내 시리아 난민 가운데 100만명 이상을 이주시키려 하고 있다.

라브렌티예프 특별대사는 이에 대해 터키의 계획은 종교적·인종적으로 예민한 이 지역의 균형을 깨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쿠르드족이 아닌 다른 인종에 속한 난민들이 이곳에 정착할 경우 쿠르드족에 대한 '인종 청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어제의 적'인 시리아 정부와 손을 잡은 쿠르드족은 반격을 개시했다.

시리아인권관측소는 SDF가 치열한 전투 끝에 터키군에 함락된 라스 알-아인을 탈환했다고 전했다.

시리아인권관측소는 개전 이후 이날까지 SDF 대원 133명과 SNA 병사 108명, 터키군 8명이 전사한 것으로 집계했다.

터키 국방부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병사 2명이 추가로 전사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개전 이후 터키군이 인정한 전사자의 수는 7명으로 늘었다.

양측의 충돌로 희생된 민간인과 전쟁의 참화를 피해 고향을 떠난 피란민도 급증하고 있다.

쿠르드 적신월사(적십자에 상응하는 이슬람권 기구)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시리아 북동부에서 적어도 41명이 숨졌으며, 165명이 위중한 상태라고 알렸다.

터키 마르딘주(州)에서는 이날 SDF의 박격포 공격으로 민간인 2명이 숨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날 "평화의 샘 작전이 시작된 이래 국경 건너 시리아 쪽에서 박격포탄 700여 발이 날아들어 민간인 18명이 순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전날 성명을 내고 "적어도 16만명이 대피했다"며 양측에 즉각 긴장 완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리아인권관측소는 피란민의 수를 25만여명으로 추산했으며,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은 일주일 사이 약 7만명의 어린이가 대피했다고 밝혔다.

쿠르드 자치정부 내에서 구호 활동을 벌이던 국제기구들도 무력충돌이 심화함에 따라 철수에 나서고 있다.



2014년부터 시리아에서 구호 활동을 벌여온 '자비군'은 전날 활동을 중단하고 외국인 대원의 철수를 결정했으며, '국경없는의사회' 역시 이날 활동을 중단했다.

다만, AP통신은 "거의 모든 구호단체가 외국인 직원을 철수시키고 있지만, 이는 양측의 충돌보다도 구호단체에 비우호적인 시리아 정부군이 시리아 북동부에 진입한 때문"이라고 전했다.

한편, 미국은 전날 터키에 군사 공격 중단을 압박하며 경제 제재를 부과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터키에 신규 제재를 부과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으며, 미 행정부는 훌루시 아카르 터키 국방부 장관, 쉴레이만 소일루 내무부 장관, 파티흐 된메즈 에너지부 장관 등 3명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터키에 대한 철강 관세를 50%까지 인상하는 한편, 미 상무부 주도로 터키와 진행하던 1천억 달러 규모의 무역 합의 관련 협상을 즉각 중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7회 터키어권국가협력위원회 정상회의에서 "우리의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작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군사작전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kind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